(관찰일기) 정리에 재능 없음

by 올제

정리를 잘 못한다. 집안 곳곳에 쌓인 사물들이 자기를 ‘사물시’로 써 줄 거 아니면 미련 없이 버려달라고 소원한다. '존재감도 없이 존재하는 것'에 진저리가 난다고 했다. 언제 다시 자기를 볼 날이 있겠냐고.


맞는 말이다. 미니멀리즘의 대가들이 자꾸 버려야 한다고 충고한다.


하지만 자꾸만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방법을 바꾸기로 한다. 쓰던 걸 쓰고 안 쓰던 걸 꺼내 쓰자고. 입던 옷 계속 입고 안 입던 옷 꺼내 입자고. 안 쓰던 걸 꺼내 쓰고 안 입던 옷 꺼내 입기 위해 마음과 몸의 살을 빼면 된다. 하지만 유행이란 게 있다고 한다.


유행이란 무엇일까? 나만의 뜻풀이를 해 본다. ‘한 때 온 세상에 흘러 퍼졌다가 사라진 것. 지금 이 순간 한창 흐르다가 언젠가 사라질 것. 곧 새로운 것이 흘러와 절정을 이루다가 종국에는 사라질 모든 것. 그러나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미적, 사상적 대세 또는 생활상’


내 맘대로 단어 사전을 만들어 보는 일이 재미있다. 왜냐 하면 어떤 단어에 대해 가만히 바라보며 대화를 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유행’이라는 단어와 대화를 하면서 느낀다. 너도 나도 언젠가는 사라질,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은 환하게 혹은 미약하게라도 빛이 나는 존재이다.


그 빛을 사랑한다. 그 빛 이전에 있었을, 혹은 이후에 사라질 세상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오래된 물건이 과거를 불러오면 그때의 ‘유행’이 빛날 것이고, 사라질 물건의 미래를 상상하면 그때의 ‘유행’이 빛날 것이다.


흘러가고 있지만 흐르는 그 순간의 빛은 어떤 형태이건 다 저마다의 ‘유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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