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수 시인의 시집 세 권을 읽었다. <적막 소리>, <쉬!>, <배꼽>이다. 가까운 것에서 시적 인식을 한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 싶다. 많이 느꼈다. 참된 시적 인식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다. 하지만 시적 인식의 수행 길은 아직 초입에 이르지도 못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시를 읽으면서 자주 속으로 말했다. “아, 맞아. 이런 느낌이었지. 그런데 어떻게 그걸 이렇게 쓸 수가 있지? 하아......”
나도 느낀 적은 있다. 다만 제대로 느끼지 못했나 보다. 쓰지는 못하겠다. 욕심이다.
문인수 시인의 시에서 가장 많이 발견한 단어는 ‘비린’이다. 아주 자주 발견한 종결 어미는 ‘~하겠다’이다. 삶은 어떤 의미에서든 누구나 ‘비린’ 것이라고 ‘하겠다’. 시인은 대상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며 제 삼 자의 시선으로 묘사하는 것 같다. 배우는 덤덤한데 관객이 우는 연극과 같다. 시인이 삼킨 눈물을 독자가 흘리고 있다. 언젠가는 삶의 ‘비릿함’에 대한 시적 인식에 이르기 위해 다시 눈을 감아 본다. 주변의 소리가 ‘적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