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없는 꽃구경

벚꽃이 피지 않은 진해를 다녀왔다. 갑작스러운 폭우에 홍매화가 떨어져 죽은 통도사에 갔다. 청보리밭이 한없이 아름답다던 가파도에 갔는데 한겨울이었다. 황매산 철쭉 군락지에 철쭉이 없을 때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이름만 대면 안다는 꽃이 그곳에 없을 때 가는 기분은 뭔가 짜릿하다. 꽃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혹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그곳에 서서 가장 한창때의 꽃을 생각해 보는 일!


이상하게도 꽃이 없을 때 상상 속에서 피어나는 그 꽃은 실물보다 훨씬 아름답고 아련하다.


벌레 먹은 잎도 없고 비뚤게 자란 꽃잎도 없고 흐릿한 색깔도 아니다. 구멍 하나 없이 매끈하고 완벽하게 활짝 피어난 상상의 꽃이 혹은 한없이 푸른 청보리가 그곳에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있는 것 같다.


꽃이 없는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냥 원래부터 그곳에 살고 있었다. 꽃이 피지 않아도 활짝 피어도 갑자기 떨어져 죽거나 사라져도 그곳 사람들은 그저 그들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희로애락이 꽃에 의해 피거나 죽는 감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냥 그렇게 꽃이 있든 없든 인간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다만 가끔씩 외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가장 화려한 시절의 그곳을 마치 그곳이 늘 그랬던 것처럼 아름다운 날들이라고 사진 속에 욱여넣고 떠나는 것이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곳 사람들은 그냥 그곳 사람들로 태어나고 살고 죽는다. 한 때 그곳에 와서 기쁨을 노래하고 지금쯤 살고 있거나 죽고 없어졌을 외지 손님들이 그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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