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의 시간


냉장고 문을 반쯤 열고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냉기에 퍼뜩 고개를 갸우뚱해 보아도 손잡이를 잡은 망각의 손은 강을 건너지 못해 찬바람을 맞고 우두커니 서 있다. 손을 놓으면 그대로 잊혀 질 것 같아 막막한 식품 칸에 고개를 박은 채, 김치에게 물어보고 계란에게 물어보고 우유를 만지작거린다. 다들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자기는 아니라며 바짝 얼어붙어 있다. 이제 손을 스르르 놓아 그들의 집을 닫아주어야겠다. 기억을 위한 냉온의 갈림길에서 함부로 시간을 멈추지 말아야겠다. 어차피 밤이 되면 모두가 보이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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