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겨울나기

새벽,

살얼음판 수돗가

하루를 씻는 뭇 수건들의 행렬

은빛 세숫대야엔 펄펄 끓는 금빛 찜통이 제격이다

엄마손 온도계가 만든 냉•온의 조화.

'미지근한'은 원래 '중용'의 언어,


아침,

칼바람 거리

까만 눈동자들의 행진

벙거지 모자엔 끈 달린 투박한 벙어리장갑이 제격이다.

엄마표 뜨개질이 창조한 둘도 없는 패션 감각.

'촌스러운'은 원래 '사랑스러운'의 동의어,


검붉게 설얼은 볼살

툭툭 갈라져 부르튼 고사리손

얇아빠진 양말 속에 꽁꽁 얼어 하나가 된 다섯 발가락

교실 난롯가에 모여 하나가 된다

드럼통 같은 난로 위에서 때론 꽃무늬가 새겨진

양철 도시락들이 기하학적인 집을 짓는다


학교를 파하면,

겨울은 간 곳이 없다

바쁜 아이들,

저마다 아이돌,

철수는 왕딱지를 따야 한다

영수는 얼음썰매 지치러 냇가 얼음판에 나선다

영희는 고무줄 챔피언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


딱지를 칠 때마다 걸리적거리는 3년 입은 내복 소매,

썰매 위 양반다리 양말에서 자꾸 빠져나가는 내복 자락,

고무줄 높이 뛰려다가 넘어져 빵꾸 난 골덴 낡은 바지,


부잣집 셋째 딸 주야는 망토를 입고 삼립 호빵을 먹는다.


그 겨울 저녁,

좁은 방구석

절절 끓는 아랫목,

얼음손과 얼음발이 모여든다

두꺼운 목화이불 아래 차가운 발가락들,

닿이는 스테인리스 밥그릇 하나.


고기 없는 김치찌개에 겨울을 말아 밥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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