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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선 Apr 30. 2023

남향집

햇볕이 그리운 곳

횡계로 온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수술 후 투병하기로  선택한 곳이 횡계였다.

횡계는 사람살기에 가장 좋다는 700미터 고지에 형성되어 있는 곳이다. 몽골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태평양 바다로 빠져나가기 위해  마지막 통과하는 곳이  대관령인데 횡계는 그곳에 있는 마을이다.

그래서  늘 바람이 세차게 분다. 바람 덕분인지 몰라도 습기가 없는 곳이다. 나무가 많은 산지인데 여름에도 무덥지 않고 시원한 곳이다. 나도 작년에 선풍기 두어 번 켜 보고 한 여름 보냈다.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라서 겨울엔 다른 곳보다 더 춥다. 눈도 많이  내리지만 바람에 습기가 말라 잘 녹지 않는다. 그 탓에 국내의 유명한 스키장은 이곳에 다 모여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다 보니 작은 곳이지만  호텔들도  있고 음식점도 많다.

 그러니 이곳에서 지내는 게 불편하지 않다. 다만 겨울이 다른 곳보다 비교적 길고 워서 겨울에는 따스한 햇볕이 그리운 곳이다. 작년에 지낸 곳은 창문이 동북향으로 나 있어서 아침에만 잠깐 햇볕이 들고 오후 서너 시만 되면 햇볕이 안 들어서 거실 불을 켜야 다. 바람이 잘 안 통하는 화장실이나 옷장뒤에는 곰팡이가 다. 혼자 있을 때는 우울해지기도 했다. 빨래를 널어놔도 잘 마르지 않는다. 그래서 집을 옮기기로 했다.

첫 번째 조건은 무조건 햇볕이 잘 드는 남향집이어야 했다.

두 번째 조건은 주변이 복잡하거나 시끄럽지 않고 관리하기 편한 곳이어야 했다.

이 조건을 갖고 여러 곳을 찾아보고 부동산과 의논했다. 마침내 이런 조건에 부합하는 곳을 찾았다.

알펜시아 리조트 가는 길목에 있는 작은 아파트였다. 지은 지는 20년이 다 되어가는 오래된 아파트지만 완벽한 남향이었다. 집이 오래되고 스키 시즌방으로 사용하던 곳이라 집 내부가 엉망이었지만 조금 손보면 그런대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계약을 하고 스키 시즌이 끝날 때 집을 손보기 시작했다.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최소한의 비용으로 손을 보고 나니 나름 살기에 충분히 멋진 곳으로 변했다.

before



after

남향으로 난 베란다에 햇볕이 하루 종일  들이친다. 아침식사를 하고 베란다 의자에  앉아 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커피를 마신다. 그때 따사로운 햇볕은 기분을  좋게 한다. 예전 어른들이 남향집을 왜 이야기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이 사는데 풍수지리가 왜 필요한지 알 것 같다. 옛 선조들이 오랜 세월 살아본 경험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난방이나 환기 시스템이 잘되어 있고 건축기술도 많이 좋아져서 방향보단 경치가 좋은 곳을 선호한다고 하지만 자연환경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우리 인간이 지혜가 있고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자연환경을 이길 수 없다면 인간은 자연보다 미비한 존재인 것이다. 창조자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따뜻한 난방과 시원한 에어컨이 따뜻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을 이길 수 없다는 건 인간의 기술이  자연의 원리를 뛰어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집의 방향하나 바꾸었을 뿐인데 삶의 질이 달라진다면  난 행복한 선택을 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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