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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선 Mar 18. 2016

나의  영원한 잔트가르

나의 아버지



요즘 드라마중에 "육룡이 나르샤"라는  드라마가 있다.

고려말에서 조선이 생겨나는 과정을 이방원이 중심이 되어 풀어나가는 드라마다.

어린 소년 이방뭔에게  변방을 잘  싸워 지켜나가는 아버지이성계는  그의 첫번째 잔트가르  였다.

하지만 이인겸의 말한마디에  무릎을 끓는 아버지에게 실망을 한 그에게 두번째 잔트가르는  원나라에 대해 자주외교를  외치며  목숨걸고 저항하는  젊은 정도전이었다.


잔트가르는 몽고어로 "최강의 사내"라는 뜻이다.

나에게도 잔트가르가 있다.  아니  있었다.

그건 돌아가신 아버지  이시다.

한평생을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걸 포기하시고  비가오나 눈이오나  가족들을 위해  등이 굽도록  손에 못이 박히도록  일 만하신  아버지가

나의 잔트가르였다.


요즘 거울을 보면 흰머리가 주름진 얼굴이  나의 잔트가르가 되어가고 있는데 나도 내아이들에게도 잔트가르가 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세상이 각박하게  돌아가면서 경제적으로도 어려운시기에  힘들게 버터나가는  오늘의 아버지들

그나마 다니던 직장에서 나이로도 밀려나는 오늘의 우리들은

아이들에게 아내에게  잔트가르 로 남겨져  있는지  의문이다.

요즘 아버지는 돈을 잘 벌고 가족들이 하고 싶은걸 해 줄수 있어야  능력 있는 아버지로  대접 받는다.


엊그제 삼십년이  넘게 다니던 은행에서  명퇴 하는 친구의 송별파티가 있었다.

그친구는 호기있게  그동안 못갔던 여행도 다니고 배우고 싶었던 것도 배우겠다고  말했지만  뒤돌아서  가는 힘없는 어깨를 보면  가슴이 아려온다.

그나마 그친구는 형편이 나은 편이다.

이제 곧 나도 저자리에  서게 될것인데  ᆢ



의학의 발달로 인간수명은  늘어나고  생체나이는  그만큼 젊어져서  직장에서 밀려나도  여지껏 산만큼 더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현실은 두렵고 불안하다.


전후 베이비 세대  끼인세대인 우리는 부모를봉양하는

마지막 세대가 되고  말았다.

우리의 아이들은 번듯한 직장  잡기가 하늘에 별따기다.

그러니 그런 아이들에게 봉양을 기대하긴 어렵다.

스스로만 손벌리지 않고 잘 살아만 줘도 감지덕지다.

결혼 하려는  아이들에게  전세집이라도  마련해 주려면 그나마  받은  퇴직금이라도  쪼개야되고 그형편도  안되면 살고있는 집이라도 팔아야 한다.

앞으로 얼마를 더 오래 살게 될지도 모르는 불안한  나의  미래가  있는데 ᆢ

그러니  요즘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잔트가르가 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아버지란 이름 만으로도  영원한 잔트가르이다.

나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나도 나의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영원한 잔트가르이고싶다.

나도 아버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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