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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선 Feb 07. 2023

아내도 여자이다

나이가 들어도 소녀이고 싶은 아내

아내와 떨어져 혼자 지낸 지 3주가 되었다. 난 횡계에서 아내는 서울에서 각자 떨어져 지내게 된 것이다.

아내는 늘 막내딸이 걱정이다. 이번에 내딸이 그동안 원하던 직장에 다니게 되었다. 그동안 해오던 일과 달리 자신이 하고 싶어 하던 일에 자격증을 따서 이직을 했다. 딸은  모든 게 서툴고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많아 엄마를 많이 의존했다. 그런 막내딸을 서울에 혼자 둘 수 없었다. 막내가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는 동안 함께 있으면서 힘이 되어주기로 아내는 작정하고 서울에 그냥 있기로 했다. 그러니 난 본의 아니게 혼자 지내게 되었다. 음식 해 먹는 것도 빨래나  집안 치우는 것도 나 혼자서 모두 하게 되니 좀 서툴고 귀찮았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 그런대로 지낼만했다.

혼자 오래 지내다 보니 아내의 빈자리가 느껴진다.

언제 가는 이렇게 혼자 지내게 될지도 모 일이다. 미리 적응 연습 하는 것 같아 기분은 별로지만 하지만 아내도 연습이 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영상통화를 할 수 있고 카톡이나 sns를 할 수 있어 자주 소식을 묻고 대화를 할 수 있으니 영영 못 볼 거란 절절한 그리움은 없다.

엊그제 아내는 카톡으로 사고 싶은 게 있다고 사진을 보내왔다.

생각지도 않은 신발이었다. 예부터 사랑하는 사람에게 헤어지게 될까 봐 신발을 선물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만난 지 사십 년이 넘고 아이도 둘씩이나 낳았으니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커다란 장식이 달린 신발이라니ᆢ 이걸 어디에 신고 다니고 싶은 걸까? 나이가 환갑이 지났는데도 아내는 이런  커다란 장식이 달린 신발을 신고 싶어  한다는 게 새로웠다. 예전 젊었을 땐 유별난 옷차림에 많은 눈길을 끌곤 했는데 지금은 거의 집에만 있고 주일날 교회 가는 게 전부인데ᆢ 그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충동적인 구매일까?

난 아내에게 물었다. 그 신발 신고 가고 싶은데 있긴 한 거야? 아내는 대답했다. 그냥 멋지게 차려입고 이 새 신발 신고 당신과 그냥 걷고 싶어 거기가 어디든지 좋아 당신과 손잡고 걷고 싶어. 아내는 가끔 연애할 때가 기억나는가 보다. 아내는 늘 유행에 민감했다. 하지만 거의 일 년 내내 단벌로 대학을 다니던  난 아내에게 뭐 하나 사줄 수 없는 형편이었다.

 레스토랑에 가서도 주머니사정을 생각해서 겨우 집사람 먹을 음식만 주문할 때니 그때  형편이 어찌했으리라 짐작이 갈 것이다. 가난한 날 이해해  주고받아준 아내 덕분에 결국 결혼까지 이어졌다.

겨우 전세로 방한칸 마련하고 난 죽기 살기로 돈을 벌었다. 월급쟁이로  벌 수 있는 것에  한계를 느낀 나는 결국 장사길로 나서고 공장까지 차리게 되었다. 여기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데 까지 왔으니

일인 삼역을 해가며 일을 했다. 그 덕분에 외환위기도 무사히 넘기고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를 갖게 되었다. 그때까지 가족들에게 신경을 제대로 못 쓰고 일만 해온 결과이기도 하다.  이제 모든 게 자리를 잡고 안정되어 갈 쯤에 암이란 병이 찾아왔다.

정신없이 수술을 받고 치료에 임한 지 십 년이 되어가는 지금 어느덧 나이가 환갑을 훨씬 넘긴 노년이 된 것이다. 동갑인 아내도 남편 바라지에 병치레에 같이 늙게 된 것이다. 그러니 그동안 변변한 외출 한번 못했는데ᆢ 아내는 함께 외출을 하고 함께 걷고 싶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서 늘 생각하는 게 있다. 오늘이 나의 인생에 가장 젊은 날이라는 거다.

아내도 더 나이가 들고  늙으면 이런 신발조차도 신을 생각조차도 안 할 것이다. 그러니 신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때 지금이 사 주어야 할 때인 거다.

나는 집사람 통장으로 신발값을 보내주었다.

아내는 신발을 받아 보고서  너무나 기뻐했다.

이제 해야  할 일이 하나가 새롭게 생겼다.

봄이 되면 아내에게 이 신발을 신기고 손을 잡고 경포대 호숫가를 걷고 근처 멋진 식당에서 식사를 할 것이다.

작은 것이지만 아내가 소녀가 되고 기뻐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일까?

산다는 게 늘 습관처럼 사는 것보다  적은 것 하나라도 변화를 가져보는 게 중요하다.

환갑이 넘었어도 아내가 소녀같이 된다는 건 정말 신나고 기대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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