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앉아있는 자리

이관순의 손편지[30-17]

by 이관순

내 앉아있는 자리


스산한 바람에 비까지 흩뿌리니 단풍은 지고 낙엽만 우수수 쌓입니다.

마른 잎들을 털어낸 나무들이 여기저기 숭숭 구멍이 뚫리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이렇듯 나무도 꽃도 지상의 모든 생명들이 사이즈를 줄이는 시기입니다.

크기를 줄이고 움직임을 줄이고 소리를 줄입니다. 그것이 한 주기의 마지막

겨울을 상대하는 지혜입니다.


사람이 나이가 든다는 것 또한 사이즈를 줄이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몸집이 줄고, 먹는 게 줄 듯, 이것이 절제의 근본이며 이치입니다. 세상에

나올 때 작게 나왔으니 돌아갈 때도 비우고 작게 돌아가야 합니다.


여기에는 실상과 허상이 공존하지만 스스로 말수를 줄이고, 욕심도 미움도

줄이고, 자랑, 명예 같은 덧없는 것은 날려야 합니다. 그래야 사이즈가

온전하게 줄어들지요.


루디 세네카는 “인간은 마치 시간이 모자란다고 불평하면서, 마치 시간이

무한정인 것처럼 행동한다.”라고 사람의 어리석음을 비꼬았지요. 그런데 사람은

이를 알면서도 어제의 습관을 오늘도 고집하고 삽니다. 내일이 계속 있는

사람같이.


친구가 많다고 자랑하시나요? 바쁜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셨나요? 그보다는

흉금을 터놓고 말할 한 사람의 친구를 더 소중하게 여길 때입니다. 친구도,

만남도, 분주함도 지혜롭게 줄여가는 것이 노년의 삶을 가볍게 하고 실수를

줄이는 방법입니다.


우리 몸은 수분이 80% 이상이라고 하죠. 비슷한 비율로 우리 삶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말입니다. 그만큼 물과 말은 몸을 유지하고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절제를 말할 때 가장 먼저 꼽는 게 말입니다.


내가 살면서 토해낸 말을 양으로 계측한다면 얼마나 될까. 그중 꼭 필요했던

말은 얼마쯤이고, 하지 않아도 되었을 말은 얼마나 될까. 이제는 할 말 못 할 말,

안 해도 좋을 말, 상처 주는 말을 가려가며 했으면 합니다. 내뱉은 말은

흘러간 세월처럼 돌릴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많이 들어주자. 듣는 귀는 ‘8’로 열고

말하는 입은 ‘2’로 줄이자. 남이 말할 때 자르지 말자. 중간에 끼어들지 말자.

말 줄기를 엉뚱한 곳으로 돌리지 말자.”


비위 상한다고 파르르, 욱, 버럭 하는 감정도 이젠 삭혀 없애야 합니다.

행여 그런 상황이 되면 심호흡 한 번으로 날려버리세요. 한 번 두 번

노력하다 보면 급하던 성격도 누그러들고 자제할 줄도 알게 됩니다.



대신 많이 웃어주면 좋겠습니다. 상대가 가족, 친구, 이웃, 직장동료 누구든

만나면 웃는 것으로 말문을 열어요. 나이가 들면 웃는 근육도 굳는다는데,

얼굴에 웃음기마저 빠지면 노인 특유의 표정 없는 일그러진 인상만 남으니

흉해 보입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옻칠을 더하는 것처럼 윤을 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웃는 일이 곧 윤을 내는 옻칠인 것이지요.

미움이나 시기, 질투는 다 헛된 뜬구름이지요. 뜬구름을 좇다가 낯선 곳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는 건 아픈 일입니다. 살고 있는 이날, 앉아 있는

이 자리가 내가 족해야 할 자리입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이 나이에 맘대로 못할 게 뭐야.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남을 배려하며 사는

인생이 아름답습니다. 살아보니 ‘역지사지(易地思之)’ 이상의 스승은 없더군요.

사서삼경이 대단한 게 아닙니다. 상대편 입장을 늘 먼저 헤아려 말하고

행동하는 그것이 상선의 절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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