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귀한 잠언을 남겼습니다. ‘사람은 모두 누군가의 선생이다.’ 빈부
귀천, 신분에 구애 없이 누군가에 영향을 미치면서 산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니 언행을 함부로 굴리지 말라는 숨은 뜻도 있습니다.
유독 미술에 둔하다고 생각해온 내게 작은 몸짓으로 심연에 잠들었던
미적 감각을 흔들어 깨운 분이 있습니다. 동양화가, 수묵추상화가라는
수식어가 달린 산정 서세옥(1929-2020)입니다.
산정 작품을 처음 만난 것은 24년 전. 그가 서울미대 교수로 재직할
때이고, 이미 자신의 미술세계로 일가를 이룬 후였어요. 인사동의 한
전시장에서 산정의 그림과 만날 때, 그간 느껴온 그림의 난해성 대신
동공이 커지는 걸 느꼈습니다.
그 후 산정의 전시회는 물론 신문에 나는 동정까지 눈에 들어오면서
화가에 대한 이해를 높이게 되었지요. 동양화의 전통적 방식을 탈피해
추상성과 단순성을 토대로 ‘수묵 추상화’라는 새 경지를 열었습니다.
1970년대에는 단순한 점과 선으로 사람들의 흐름을 표현하는 천재성을
부각하더니, 후반에는 자연에 동화해가는 모습과 인간 본질에 다가
가는 작품을 많이 선보였습니다.
산정의 작품에 보다 깊이를 느낀 것은 2016년 2월 중앙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서세옥 특별전’에서 입니다. 작품의 소재가 다 사람들이었는데,
단순한 선으로 연결된 추상 기법의 표현이 단조롭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지루하지도 않았지요.
산정의 그림에는 그의 표현대로 추함도, 화려함도, 한쪽으로 기울지 않은
사치와 검소를 봅니다. 전시장에 걸린 글은 산정의 그림에 인생 교본을
덧대어 놓은 듯했습니다
*화이불치(華以不侈):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
*검이불누(儉以不陋):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다.
❝있는 것만으론 새로울 수 없고 없는 것만으론 공허하기만 하다. 길게
보면 무상이 없고 짧게 보면 유상이 없다. 이는 화가가 가는 길목에서
처음부터 모든 걸 열어놓고 생각해야 할 화두다.
저 달은 잠깐 보면 차고 기울지만 항상 보면 되돌아오고, 저 강물도 묵은
물과 새 물이 이어져 흐르나 나누지 않고 함께 흐르고 또 흐른다.❞
인생도 늘 비우면서 채울 것을 찾아야 해요. 그러려면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채워도 2할은 비워두는 여작의 삶이어야 옛 것과 새 것이
만나고 흐릅니다. 무엇을 비우고 무엇으로 채울 건가.
화가는 예부터 바람도 잡고 그림자도 잡아내야 하는 ‘포풍(捕風)과
착영(捉影)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보이지 않는 저 바람을 어떻게 잡아
낼까. 나뭇가지 휘어지고 옷자락이 펄럭이는 모양을 그리는 것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람은 우주가 소통하는 최초의 표현이죠. 망망한 바다에 바람이 불면
파도가 일고, 끝없고 거대한 휘파람 소리가 납니다. 산정은 우주가 살아
숨 쉬는 모습이 붓끝에서 들려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그림’은 ‘그림자’로 시작된 줄인 말입니다. 그림자는 무엇이든 흉내를 낼
수 있으니, 만유는 그림자의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해석이 가능해
집니다. 문학도 그림자의 숙명은 마찬가지죠.
❝사람 또한 그림자일 뿐이라면 우리도 예외 없이 그림자로 놀아나는
숙명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내가 어둠 속으로 숨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어둠 속에는 그림자가 없다. 때문에 화가는 항상 무대 밑 어두운 곳에서
자기를 낮추고 화려한 조명 속에 난장판이 벌어지고 있는 그림자
향연을 지켜봐야 함을 화두로 새겨야 할 일이다.❞
‘서세옥 특별전’ 은 나와 타인과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고,
자연과 인간의 조화에 대해 성찰케 합니다. 추상 기법으로 표현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그래서 더욱 친밀함을 더합니다.
작품마다 두 사람 이상이 모였지요. 손잡고 군무하면서 연대하는 ‘合’의
가치를 온몸으로 전달하는 작품도 있고, 그 속에서 인간을 확인하고
자연과 인간의 ‘합’을 찾기도 합니다.
지난해 11월, 치열하게 살다가 조용히 세상을 등진 서세옥. 그가
표출한 다양한 형태의 사람과의 만남은 내 안의 다양한 형태의
그림자와 만나게 해주는 선물이 되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