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245]
어릴 때 내 팔과 무릎은 성할 날이 없었어요. 곳곳이 깨지고 긁히고
멍이 들어 다니던 시절 말입니다. 지금 같이 밴드나 연고 같은 것이
없었던 때라 상처엔 무조건 ‘빨강 약(머큐로크롬)’을 찾았어요.
아이가 다쳤을 때 엄마와 아빠의 대응을 보면 재미있습니다. 엄마 손을
잡고 나온 아이가 퇴근하는 아빠를 부르면서 뛰어가다 넘어졌어요.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지만 상처가 심하지 않은 걸 안 아빠의 말법이
엄마와는 사뭇 다릅니다.
“괜찮아. 됐어. 남자가 이런 걸로 우냐. 그러니까 조심해. 알았지?”
아빠는 ‘알았지’를 강조하는데 위로가 안 된 아이는 더 섧게 웁니다.
같은 상황에서 엄마라면 어떻게 할까요?
우선 아이부터 꼭 안아줍니다. “놀랬지? 많이 아프겠다. 속상하지?
엄마가 봤어 피 안나. 걱정 마.” 계속 위로의 말을 건네며 아이 등을
토닥여 주죠. 상처를 확인한 아이는 그제야 울음을 그칩니다.
어릴 적, 겨울방학이 돼 부모님과 기차를 타고 외가로 가는데 너무
추운 날이었어요. 그때는 객차가 화물차 개조 수준이라 난방은커녕
숭숭 찬바람이 들어옵니다. 추워서 몸을 배배 꼬니까 아버지가
그러시더라고요.
“사내가 이 정도 추위를 못 이기면 어쩌냐. 이렇게 제자리에서 뛰어봐.
몸에서 열나게.” 그리고 시범을 보이십니다. 이 모습을 보던 어머니가
말없이 다가와 당신의 버선을 벗어 내 발에 덧 씌워 주십니다.
아이는 같은 것 같으면서 조금은 다른,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랍니다.
그러다 어느 나이가 되면 엄마의 말은 야단을 쳐도 들은 척도 않지요.
그래서 미운 몇 살이 생겼겠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것은 아무리
말해도 같은 실수를 계속한다는 점입니다.
“위험하다”라고 소리쳐도 귓전으로 흘리니까 그때마다 엄마는 가슴이
철렁합니다. 그러다 지치면 엄마가 꼭 하는 말이 있어요. “너 한 번
된통 다쳐봐야 정신 차릴래?”
아이들에게는 그 말이 백 번 맞아요. 골백번의 말보다 스스로 한 번만
다쳐보면 바로 깨칩니다. 몸으로 겪어보는 것만큼 효과가 확실한 것은
없지요. 큰 위험이 아니면 너무 아이를 보호하려고 과잉방어를
하지 말랍니다.
독일에서는 어린이 놀이터를 만들 때 안전만을 고집하지 않고 감당할
정도의 위험 요소를 고려한답니다. 떨어질 위험이 있는 놀이기구에
안전망 같은 장치를 느슨하게 해 두거나, 나무로 된 놀이기구도
매끄럽고 보기 좋게 하는데 치중하지 않는다고 해요.
가끔 가시에 찔려야 가시를 조심하고 떨어져 봐야 본능적으로 안 떨어
지는 법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에 다쳐본 사람이 어른이 돼서
더 큰 위험을 피하게 된다는 이치를 적용한 것이지요.
흥미로운 건 아이를 보호한다고 어른이 함께 있으면 되레 더 다칠
수 있다는 연구조사가 있다는 것이죠. 어른이 나를 보호하고 있다는
의식이 잠재되면 방심하는 심리가 생긴다고 합니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처 없이 어떤 것도 배울 수 없습니다.
책이나 가르침으로 얻는 교훈은 제한적입니다. 경험이 최고의 산교육
입니다. 그러니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상심까지 할 건 없지요.
우리가 어렸을 때 그랬듯이 아이들도 아픔을 통해 깨달을 테니까요.
음악가 정경화 씨가 같은 이야기를 했어요. 손가락 부상으로 쉬면서
배운 것이 “인생은 원래 헤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헤맬 때는 그냥 헤매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고 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녀 인생에서 후회가 되는 일은
모조리 망설이다가 하지 않은 것들임을 알게 됐으니까요.
실수할까 봐 주저했던 것들 말이죠. 그녀가 헤맨다는 건 그냥 헤매는
게 아니라 무언가 찾아 헤매는 거였어요. 그러다 길을 잘못 들어서
정신없이 헤맬 때도 있었겠죠. 악기를 다루면서 그랬다고 합니다.
내 머리가 원하는 것과 내 몸이 따라가는 속도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스스로 지나치게 저자세로 살지는 않았는가 회의가 들었다고 해요.
그러다 손을 다쳐 못 움직이면서 이런 답을 얻었습니다.
“완벽하게 하려고 망설이며 안 하는 것보다 헤매더라도 하는 게 낫다.”
모든 상처에 통했던 ‘빨강 약’처럼 최고의 스승은 경험입니다. 굶어봐야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목말라 신음해 봐야 물이 생명수임을 아는 것처럼.
죽음이 눈앞에 어른댈 때서야 비로소 내가 이 세상에 객이 아니고,
주인이었다는 사실을 깨칩니다.
그래서 ‘죽을 때 가야 철든다’는 말만큼 뼈 아픈 말이 없습니다. 사람이
사는 게 이처럼 어둑하고 엉성하기 이를 데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