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196]
저 숲에는 몇 개의 길이 있을까
여동창이 카톡에 올린 글입니다. 얼마 전 직장맘인 엄마를 붙잡고 어린
손녀가 펑펑 울더랍니다. “코로나 언제 끝나?”냐고 물으며. 그 어린것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으면 꾹꾹 눌러왔던 울음을 터뜨렸을까.
어디 그 아이뿐인가요. 말은 없어도 우리 마음은 모두 이심전심입니다.
밤 9시에 인적이 끊기는 서울이란 도시를 보면, 사이렌 소리와 함께 등화
관제로 불을 끄던 2차 대전 때, 유럽의 도시가 망령처럼 살아납니다.
하루는 컴퓨터에서 멀어져 보자고 문밖을 나섰는데, 아차산에 갈까 했던
발길이 춥다는 핑계로 돌고 돌아 도서관 앞에 서 있는 나와 만났어요.
서가 사이를 어슬렁이다 정석주·반칠환 시인의 시집과 조우했습니다.
언제 읽어도 품은 뜻이 명쾌하고 잠든 마음을 깨워 잔잔한 물결 파동을
안겨주는 시들입니다. 연말이란 절기 탓 때문일까. 두 편의 시가 발갛게
피어오른 숯불같이 내 시선을 잡습니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과 반칠환 시인의 ‘새해 첫 기적’입니다.
두 편의 시가 ‘손편지’의 글제로 떠올랐습니다. 절과 멀어져 보자고 길을
나섰던 승려가 엉뚱한 데서 시주받는 느낌이 들더군요.
벼룩이 뛰어봤자 손바닥 안인 것을. 결국엔 컴퓨터 반경을 맴돌았구나.
덕분에 ‘대추 한 알’은 12월에 인용하고, 반칠환의 시 ‘새해 첫 기적’을
2021 신년맞이 첫 글로 내놓게 되었지요.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이렇게 우리는 새해 새날의 기적을 맞았습니다. 역대 어느 해보다
고달프고 아팠던 사연 많은 2020년을 떠나보내고, 새 출발을 시작한
것만으로도 기적입니다. 희망의 새 씨앗을 품은 푸른 여명과의
만남이니까요.
이룬 것이 있어 즐거운 사람이나, 고되고 우울했던 기억뿐인 사람이나,
같은 출발선에서 다시 신발끈을 동여맨다는 것은 기회입니다. 삶에 우열이
있고 행불행이 따로 있어 보여도, 실은 똑같은 생사봉도(生死逢道) 위의
인생입니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는
이 시는 2012년 이맘때, 교보생명 광화문 글판에도 걸렸던 구절이어요.
새 희망을 염원하는 메시지가 앙증맞은 복조리처럼 보였습니다.
걷든, 뛰든, 기든 방법은 각기 달라도, 결국 한날한시에 도착해 새날을
바라볼 수 있다니! 놀라운 일! 다시금 최선을 다해 한 발씩만 앞으로
나가면 올해도 기적을 예약할 수 있으니 ‘설렘’입니다.
2021년은 가보지 않은 푸른 숲입니다. 낯설긴 하지만 호기심도 불러요.
저 숲엔 얼마나 많은 길이 있을까? 남산을 오르는 길이 하나가 아니듯,
굳이 남이 낸 길을 고집할 필요는 없겠지요. 낯설고 힘들어도 내가 밟으면
나의 길이 됩니다.
때로는 길을 잃어야 길이 보입니다. 조선시대 김정호가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낯선 숲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내가 밟으면 다 길이라는 신념으로
낯설고 물선 곳을 한없이 헤매고 돌고 돌아 대동여지도를 만들고 역사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불행을 질투할 권리를 네게 준 적 없으니/ 불행의 터럭 하나 건드리지
마라/ 불행 앞에서 비굴하지 말 것./ 허리를 곧추 세울 것./ 헤프게 울지 말
것./ 울음으로 타인의 동정을 구하지 말 것./ 꼭 울어야 한다면 흩날리는
진눈깨비 앞에서 울 것./... /울어라 울음이 견딤의 한 형식인 것을/ 달의
뒤편에서 명자나무가 자란다는 것을 잊지 마라. -장석주 시 ‘명자나무’ 중
내겐 불행을 질투할 권리마저 없으니 고통 앞에 비굴하지 말라고 해요.
헤프게 울지 말고 허리를 고추 세워 고통과 맞서서 참고 견뎌내면
고통 너머의 열매가 보인다는 것입니다.
혼자서 외로움을 견디고 걸어도 쓸쓸하지 않은 습관을 지닌 사람은 기억
합니다. 달 뒤편에 붉은 꽃을 피울 명자나무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날든, 뛰든, 걷든, 기든, 구르든 다 좋으니
부디 올 한 해 멈추지만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