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상처엔 딱지가 앉았나요

이관순의 손편지[27]

by 이관순

우리는 살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경험합니다. 가장 슬픈 것은 어린 것을 남기고 떠나는 젊은 엄마의 죽음이죠. 어느 날 갑자기 한 아이에게 찾아온 엄마의 죽음, 엄마를 잊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아이. 그 절망의 끝에서 돋아나는 희망, 그리고 다시금 몸을 추슬러 일어서는 모습은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암 투병하던 후배의 아내가 떠났습니다. 일곱 살 아이는 그렇게 엄마를 잃었지요. 또래 아이들에게 엄마는 세상의 온갖 두려움과 어려움에서 지켜 주는 수호신이고, 모든 것을 사랑으로 감싸 안는 넉넉한 품이자 아이의 삶 자체인데 말입니다. 이런 엄마가 한순간 훌쩍 떠나버리면? 어른도 감당하기 힘든 이별의 아픔을, 어린 아이는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요? 아직 몸으로나 정서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아이에겐 너무 가혹한 일입니다.

‘무릎딱지’란 책은 엄마의 죽음이란 다소 충격적이고 무거운 이야기를 아이의 눈을 통해 담담하게 그려놨습니다. 절제된 언어로 아이의 심리 상태를 렌즈로 들여다보듯 섬세하게 표현한 것이 좋았습니다. 처음에는 엄마의 죽음에 대해 분노하고 부정하다가 점차 그것이 엄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집착으로 바뀌는 과정이 마음을 아리게 합니다.


할머니가 어린 가슴을 회복시키려고 아이의 가슴을 짚으며 말합니다. “엄마는 멀리 간 게 아냐. 여기, 쏙 들어간 데 있지? 여기 있어. 네가 씩씩하게 자라면 엄마도 기뻐하고, 슬퍼하면 엄마도 슬퍼한단다.” 할머니와 무수한 대화를 통해 엄마가 항상 내 가슴에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상처를 극복하고 성장해가는 과정을 ‘딱지’를 상징으로 담아냈습니다.


딱지는 아이의 마음속 상처를 뜻합니다. 엄마가 날 두고 갈려면 낳지 말지 왜? 아이울음은 상처의 덧남인 동시에 회복을 향하는 첫 발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상처를 보듬는 새살이 돋고 어느새 딱지가 떨어져 매끈한 살로 복원되지요.


사람은 모두 상처를 만들고 삽니다. 차이라면 딱지가 잘 앉도록 감싸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계속 긁어 딱지가 앉질 않아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죽음을 애써 어둡게 그리지 않음은 엄마의 죽음이 끝이 아님을 암시하는 것이죠. 아이의 곁을 떠난 엄마는 눈으로 볼 수 없을 뿐, 가만히 눈을 감고 떠올리면 아이의 가슴속에 살아 있으니까요. 엄마의 죽음을 극복하고 성장해 나가는 아이를 보면 대견스럽고, 가슴 한편에 짠함을 느끼게 합니다.


내 친구도 지난 해 사랑하는 아내와 이별했습니다. 교통사고로 대책 없이 훌쩍 떠나간거죠.‘죽음’ 이후의 만만치 않은 과제만 남편에게 안겨준 채로. 장례 때는 가슴만 먹먹하다며 눈물도 안 보인 친구인데, 누구보다 강단하나는 있던 친구인데, 아내를 보낸 뒤로는 말문을 열다 눈시울부터 적십니다.

가는 곳곳마다 진동하는 아내의 체취로, 너무 힘들다합니다. 꽃밭에도, 장독대에도, 냉장고 문짝에도 그녀가 머물지 않은 곳이 없으니까요. 같이 걸었던 숲길, 쑥을 캐던 개울가, 대문을 열고 들어설 때도 “당신야~?” 사방에서 들려오고 보이는 건 아내 목소리, 얼굴뿐입니다.


늘 곁에서 숨 쉬며 함께 웃고 울던 사람을 잃었을 때, 밀려오는 절망감과 상실감은 어떤 것일까? 살을 부비며 살던 가족을 잃은 아픔은 어떤 이별보다 큰 상처이겠죠. 하지만 죽음은 누구나 겪어야 하는 삶의 과정이란 것도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모두가 겪게 될 죽음과 이별을 무조건 피하려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그후 친구는 딸이 사는 아파트로 이사했고, 가끔 딸이 운영하는 미술교습소에도 들립니다. 잔잔한 색채와 가슴에 스미는 감성적인 그림들에 위로를 받습니다. 아이가 그린 것 같은 투박한 연필 선들이 때로는 가슴을 차분하게 해준답니다.


오늘도 늘 하듯, 아내가 좋아한 커피를 내려 보온병에 담아 나가는데 현관까지 따라온 딸이 말합니다. “아빠, 이젠 한 주에 한 번만 가자. 거기 엄마 없어. 엄마는 여기 있어!” 가슴 의 명치 부위를 손가락으로 콕 찌르며 웃습니다.


1주기를 지나고 친구와 만났습니다. “상처엔 딱지 좀 앉았니?” “아직도 그래. 그게 쉽겠냐.”

“뭐야, 딱지도 3년 상 치러 달래?” 농담으로 말하고 같이 웃었지만, 둘의 헛헛한 웃음은 파란 하늘 아래 금세 흩어집니다. 생명이 스러진 자리엔 풀도 쉬 자라지 못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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