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26]
인생은 어제의 긴 이야기
뚱딴지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갑자기 조선시대에 뚝 떨어졌다면 살 수 있을까? 영화도, 만화도, TV극까지 시공을 초월한 제작물이 넘쳐나 때론 엉뚱한 상상을 자극합니다. 월초에 시작한 TV극 ‘조선 생존기’도 그런 욕구를 부추기죠. 꿈과 가족, 연인까지 잃고 무력감에 빠진 한 청년이 조선시대로 ‘타임슬립(시간이동)’해 삶의 활력을 찾는 이야기인가 본데, 현실과 과거가 어떻게 교차하고, 꿈과 현실은 어떻게 구분되는지 더럭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소설 ‘최척전’이 이에 해당합니다. 남원에 최척이란 젊은이가 살았답니다. 양반은 아니지만 세상을 원망하며 살지는 않았습니다. 빠듯한 살림에도 홀로 된 어머니를 봉양하고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열심히 사는 총각이었습니다. 어느 날 서울에서 양반집이 마을에 이사를 옵니다. 양반 어른이 죽은 후 가세가 기울어 낙향했다는 전언입니다. 그 집엔 옥영이라는 예쁜 아가씨가 있었지요. 옥영과 마주친 최척은 블랙홀처럼 그녀에게 빠져듭니다.
. “이놈아, 정신 차려! 그 집은 뼈대가 양반여 이것아!” 어머니는 아들을 꾸짖지만 아들 마음엔 불만 활활 타오릅니다. 저러다 아들 버리겠다 싶던지 사람을 넣어 옥영 엄마의 의중을 떠봤지만 싸늘합니다. “우리는 양반일세.”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억척스런 열공 끝에 최척은 옥영과 오매불망해온 혼례를 치르게 됩니다. 하루가 꿈같이 지나는데, 아이가 생기지 않아 고민입니다. 옥영은 정한수를 떠놓고 지극 정성으로 빌었지요. 그 때문인지 첫 아들을 얻게 됩니다. 꿈에서 점지 받았다는 몽석이란 이름을 달고.
그러나 왜란이 길어지면서 이들 부부 앞에 가시밭길이 열립니다. 최척은 의병으로 명나라 군에 끌려갔다가 패전해 명군과 함께 중국으로 사라졌고, 옥영은 일본군 포로가 돼 나가사키로 끌려가지요. 처자식과 헤어져 홀로 된 최척은 기약 없는 나날을 살아가고, 일본에 끌려온 옥영은 퇴역한 늙은 군인 가정으로 들어갔지요. 다행이도 일본인은 그녀를 딸처럼 아껴 전쟁이 끝나자 중국 절강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무역에 눈을 뜨게 해줍니다.
어느 날 밤, 최척이 절강 항에 나와 고향생각에 눈물지을 때, 어디선가 애를 끓는 퉁소 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연이어 여인의 슬픈 시조가락을 읊는 소리가 밤공기를 흔듭니다. 남자는 홀린 듯 여인의 소리를 따라 가는데. 놀랍게도 소리의 주인공은 오매불망해온 아내 옥영이었습니다. 사업차 절강에 왔다가 신세를 한탄하던 참이었죠.
꿈같은 재회를 한 최척과 옥영은 새 가정을 꾸립니다. 이들은 절강에서 둘째 아들 몽선을 얻지만, 행복도 잠깐 조선으로 돌아갈 날 만 손꼽던 이들 앞에 또 한 번 이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명나라가 만주에서 일어난 후금의 누루와치를 치기 위해 출병하면서 최척도 끌려간 것이지요. 하지만 명군이 패하며 최척은 후금의 포로가 되고 맙니다.
한편, 조선에 홀로 남은 큰아들 몽석은 명군을 돕기 위한 조선군으로 징발됩니다. 명군을 따라간 몽석은 전쟁에 패퇴하면서 후금의 포로 신세가 되지요. 전화위복이 이런 걸까요? 포로수용소에서 기적 같은 부자 상봉을 맞으니 말입니다. 국제포로 신세로 전락했던 아버지와 아들은 한참을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남은 가족을 만나야 한다는 열망을 안고 최척 부자는 마침내 탈출에 성공합니다. 국경을 넘는 긴 여정 끝에 고향 남원 땅에 도착했습니다.
이즈음 중국 절강에서도 희망이 꿈틀댑니다. 남편을 기다리다 못한 옥영은 아들 몽석과 조선으로 탈출을 시도합니다. 악전고투 끝에 고향땅을 밟는데 성공합니다. 옥영 모자의 환향 소식을 듣고 최척과 몽석이 달려 나오고... 꿈에도 잊지 못했던 아내와 남편, 두 아들이 감격의 재회를 이룹니다. 비로소 최척은 10여년 만에 이산의 한을 끊고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이, 사백년 전에 쓰인 ‘최척전’의 내용입니다. 임진왜란이 소설의 무대를 동아시아로 넓혀 국제소설을 만들어낸 셈이지요. 전쟁은 삶을 처참하게 파괴하지만, 새로운 사조와 문물에 눈 뜨게 하는 아이러니함을 낳았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내일이 오면 오늘은 어제의 이야기가 됩니다. 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고, 현재는 한 순간에 지나가니, 오직 과거만 하나의 긴 이야기로 남습니다. 결국 인생이란 어제의 긴 이야기를 만들고 이어갑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과거로의 회귀를 낯설어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가 대부분 지난 일인 것처럼. 수백 년 전으로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TV극처럼. (daumcafe/leeletter 12.5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