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순의 손편지[28]
화가 박수근의 말년 작으로 추정되는 유화 ‘고목과 여인’(왼쪽)이 고국으로 돌아온다 합니다. 미국인 소장자가 경매에 내놓아 국내 첫 선을 보이게 되었다지요. 중앙에 세로로 길게 고목 한 그루가 서 있고, 노란 꽃이 피어난 주변에는 허리를 숙여 일하는 여인, 머리에 짐을 인 여인, 지나가는 소녀들이 보입니다.
많은 사람이 박수근이란 이름에 친근감을 갖지요. 특히 ‘귀로’의 나목은 볼수록 마음에 생각을 안겨주는 그림이죠. 몸뚱이가 부러져 있는 ‘나목(裸木)’. 잎사귀 하나 없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 폭격을 맞기라도 한 듯 몸통이 뚝 부러져 있어 애처롭게 보입니다. 이 나무도 예전엔 마을 사람들의 멋진 친구였겠죠.
봄에는 꽃을 피우고 신록을 드리워 연인들을 부르고,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로 농부들을 초대해 땀을 식혀줍니다. 가을에는 탐스러운 과일을 주렁주렁 달았다가 달구경 나온 사람들에게 선물로 떨어뜨려 주기도 합니다. 그러다 겨울이 찾아오면, 나무는 아무것도 줄 게 없는 꾀 벗은 몸만 남습니다.
그림에는, 광주리를 머리에 인 엄마와 아이가 빈 나무 밑을 지나는데 아버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혹시 이 나목이 아버지의 마음을 대신하려는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이 어른댑니다. 나무는 가족에게 큰 팔을 뻗어 그 아래 아늑한 보금자리를 만들어주고 싶지만, 가진 것이 마른 가지뿐인 아버지는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으로 서있어 보입니다.
박수근은 6.25전란을 겪으면서 밥벌이로 미군부대에서 의미 없는 간판그림과 싸구려 초상화를 그려주면서 가난한 삶을 살았어요. 그 때의 박수근을 지켜 본 사람이 소설가 박완서입니다. 박완서는 그를 모델로 소설 ‘나목’을 썼지요. 그냥 가난뱅이 간판 화가쯤으로 알았던 박수근의 진짜 그림을 보았던 날, 박완서는 그가 받은 충격을 소설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캔버스 위에서 하나의 나무를 보았다. 거의 무채색의 불투명한 뿌연 화면에 꽃도 잎도 열매도 없는 참담한 모습의 고목이 서 있었다. 땅도 없는 뿌연 혼동 속에 고목이 괴물처럼 부유하고 있었다.”
그림과 소설이 상통하면서 서로를 보듬고 서로를 존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영향을 받아 그림 ‘귀로’를 ‘나목’으로 부르는 사람들도 꽤 많아졌지요.
쉘 실버스타인이 지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언제 읽어도 마음이 훈훈합니다. 한 소년을 사랑했던 나무는 소년에게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고, 그것을 자신의 행복으로 여겼지요. 나무가 만든 그늘에서 바람을 쐬며 몸이 자라고 생각을 키운 소년은 어느덧 어른이 되어 나무 곁을 떠납니다.
그 후 어느 날, 소년이 다시 찾아와 슬픈 표정으로 말합니다. 돈이 필요하다고요. 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다 내주고, 소년은 이를 시장에 팔아 돈을 마련합니다. 그뿐인가요. 소년에게 집이 필요할 때, 자신의 멋진 가지들을 잘라 집을 짓게 하고, 배가 필요해 질 땐 자신의 몸뚱이를 잘라 배를 만들게 합니다. 세월이 지나 소년이 늙었을 때, 나무도 밑동밖에 남은 것이 없습니다. 그래도 나무는 웃으며 말하지요. “여기 걸터앉아 좀 쉬게”
박수근이 그린 ‘귀로’의 나무는 더이상 사람들이 찾아올 만큼 든든한 나무가 못됩니다. 줄 것이 없게 된 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그래서 박완서에겐 마음 저미는고목으로 보였나봅니다. 하지만 나목은 생각처럼 슬픈 나무는 아닌 듯합니다. 모두 잃은 것 같지만 마음에 쌓인 것도 있으니까요.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게 훨씬 큰 기쁨과 행복임을 나무는 알 테니 말입니다.
그림을 보노라면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줄 게 없는 나무’는 연상 작용을 일으킵니다. 아름다우면서도 애잔함을 일으키는 나무의 이미지가 우리네 인생과 너무 닮았습니다. 아버지가 그런 나무였습니다. 자식들을 위해 모든 걸 우직하게 희생만 한 분. 이를 깨달을 때가 되니 어느새 내가 그 나무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더 줄게 없는 그림의 몽똑한 가지들이 ‘슬픈 모가지’를 한 사슴처럼 눈에 들어옵니다.
마음껏 주었던 행복한 기억들. 더 주지 못한 안타까운 기억들. 지나고 나면 모두 다 서쪽하늘을 물들인 노을만큼 아름답습니다.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떤 추억을 만들었는지 그 기억이 숨 쉬는 공간을 나무는 간직했겠지요. 아버지의 마음처럼 (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