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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관순 Apr 17. 2022

벚꽃엔딩과 이등병의 편지

이관순의 손편지[291] 2022.04.18(월)

 봄이 성급한 매스컴의 기상나팔로 잠을 깨더니 어느새 절기는 청명을 

돌아 곡우로 향합니다. 이정표가 바뀌는 이맘 때면 생명의 외경함이 

생살처럼 차오르는 섬진강 꽃길이 떠오릅니다.    

  

강가엔 우렁이가 알을 까고 마른 갈대 위로 개개 개~ 우는 개개비가 

청아한 울음을 높일 때입니다. 강을 찾아와 주인이 되고 둥지를 틀어 

사랑을 나누는, 곳곳이 생명 에너지로 넘쳐나죠.


물고기와 새들하며 곤충들까지, 섬진강 갈대숲은 무수한 생명체에게 

번식처가 되고 은신처가 되는 곳. 봄은 생명의 태반입니다. 한 해를 

살아도 혼신을 다하는 생명의 탈환 모습은 늘 경이롭습니다.     


암록 빛 섬진강을 품은 산과 들엔 꽃보라를 날리는 봄의 지령(地靈)으로 

충만하고, 나무마다 움이 돋고, 순이 나고, 연녹색 새 잎들로 우중충했던

회색 산들이 살아납니다, 봄꽃들도 찬란한 빛을 찾았습니다.      


하동의 벚꽃.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십리는 모두가 꽃길입니다.

입안 가득 피어나는 웃음꽃들. 낯선 객은 친구가 되고, 우연은 필연이 

되는, 누구와 만나도 어질고 반가운 봄날이 흐릅니다.      


벚꽃이 눈송이처럼 피어오르던 날…. 산길을 재촉하는 동자 스님에게 

길을 묻다가 짧은 동행의 연이 시작됩니다. 가깝게 절이 있으니 

스님과의 조우가 낯설 일은 아닙니다.       


“지금은 어딜 가도 도량(道場)이지요. 걷는 것도 수양입니다.” 정다운 

인사를 남기고 잠잠히 걸어간 그 단아한 눈빛의 동자 스님은 올해도 

쌍계사 꽃길을 밟을까.      


윤중로에도 벚꽃 계절이 활짝 열렸습니다. 화사하게 펴 오르다 바람처럼 

흩어지는 자연의 순환은 늘 같은 이름이어도 가슴에 닿는 느낌은 매 해 

다릅니다. 때로는 아픔이고, 기쁨이고, 그리움일 때도 있습니다.   

  

요즘 거리에 흩날리는 노래는 단연 ‘벚꽃 엔딩’입니다. “그대여 그대여~ 

오늘은 우리 같이 걸어요~ 몰랐던 그대와 손잡고 둘이서 걸어요~” 

어쩜 저렇게 장범준의 목소리가 벚꽃 잎에 살랑이는 바람 같을까.   


버스커버스커 그룹으로 오디션을 통해 데뷔한 장범준이 ‘벚꽃 엔딩’을 

발표한 때가 2012년인데 봄의 생글생글한 분위기는 올해도 여전하고, 

벚꽃 좀비들로 이 계절을 에워쌌습니다.       


100억 이란 저작권료를 벌어들이며 ‘벚꽃 연금’이란 신조어까지 만든 

‘벚꽃 엔딩’은 가히 국대급입니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들~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하지만 내겐 같은 해 나온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가 더 달달합니다. 

벚꽃이 빗속에 흩날리는 청풍 호반 버스 안에서 듣던 ‘이등병의 편지’가

저리도 붉은 날의 추억을 흔들까.      


그것은 옛 신작로, 길 끝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 

같은, 아련함이고 아득함입니다.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풀 한 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기적소리 멀어지면 

작아지는 모습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전국 산하마다 발길 닿는 곳에 봄꽃들이 꼬리를 물며 지천으로 필 때, 

꿀벌들의 역사도 꽃보라 속에 흩날립니다. 개천에서 몸을 푸는 은어떼와 

춘광 아래 꽃들을 꺾는 해맑은 아이들 웃음까지…. 

     

돌담 넘어 보리밭 이랑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하며, 그 위로 수직 

비행하는 종달이의 울음까지, 모두가 주연급인 봄의 향연은 늘 어질고 

아름답고 경이롭습니다.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을 펴주는 한 움큼 하늘의 은총이고요...


-소설가/ daum cafe 이관순의 손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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