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가지의 헌신을 알까

이관순의 손편지[342] 2023. 04. 17(월)

by 이관순

우리말 중에 ‘철이 든다’는 말을 좋아한다. 아름답고 내밀한 속뜻이 깊어서다. 어릴 적 살았던 마을에 일은 않고 술과 유희만 즐기는 아들을 둔 어머니가 늘 하는 말이 있었다. “저 원수는 죽어서나 철들까! “ 혀를 차곤 했었다. “제발 철 좀 나거라.” “도대체 너는 몇 살 먹어야 철날래?” “쟤 말하는 것 봐 철들었네.” 자라면서 참 많이 들었던 말이다. 그때마다 ‘철’이란 귀하고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훗날 ‘철’이 ‘계절’이란 걸 알게 되었다. 철든다는 말은 계절을 따라 밭을 갈고 파종하고 거두어들이는 절기를 알아 일한다는 뜻이란 것을…. 동시에 사리를 옳고 분명하게 판단하는 힘이나, 자기의 나이에 걸맞은 처신을 뜻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버지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며 자랐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 모든 걸 다 알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알지 못하는 게 더 많아지고, 어른이 되면 모든 걸 다 이해할 줄 알았는데 이해할 일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이 예순을 ‘이순(耳順)’이라고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인생에 대해 의문만 쌓였다. 죽을 때까지 모르는 게 인생이라 생각하면 언제라야 온전한 철이 들까 엉뚱한 염려를 하기도 한다. 늘어나는 나이테만큼 인생을 깨치고 세상을 보는 눈이 밝지 못함을 느껴 서고, 갈수록 세상이 한 치 앞을 가리지 못할 만큼 혼미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올봄에 소중한 하나를 깨쳤다. 모든 생명들이 살아나던 봄에, 우리의 눈을 현혹하고 입으로 감탄케 한 것은 갓 나온 녹색들이었다. 죽은 줄 알았던 나무에 연녹색 잎들이 나올 때, 하루가 다르게 그 무늬를 키워갈 때, 그 아름답고 신비함이 꽃과는 또 다른 찬탄을 자아내게 했다. 오랜 가뭄 끝에 푸근하게 비가 내린 다음 날, 올해도 우리 동네 장자공원 호숫가에서 늘어진 수양버들 가지에 싱그러운 연녹색 잎들이 층을 더해나는 걸 지켜보았다. 생명의 환희가, 생명의 탈환이 저렇게 눈물겹고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으로.


그러다가 갑자기 내 동공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이 나이가 되도록 보이지 않던 것이 비로소 보이는 순간이었다. 싱그러운 연녹색 잎새 사이에 휘어져간 검은 나뭇가지들을 본 것이다. 몸에 전율이 일었다. 혼신을 다해 뿌리로부터 수분과 양분을 끌어올리는 가지들의 땀과 노고에 대해 눈을 뜬 것이다. 겨우내 앙상했던 가지들이 언제 저렇게 튼튼한 피부로 근육을 키웠을까. 강하면서 유연하게 곡선을 이루며 뻗힌 가지 위로 이슬같이 싱그럽고 풋풋한 연녹색 잎들을 피워놓은 것이 너무도 찬란해 보였다.


그 위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가 스러졌을까... 가지의 아픔과 상처가 생각났다. 진실로 이봄을 빛나게 한 것은 찬란한 꽃들과 연녹색 잎들을 마른 가지에 피워낸 가지의 헌신임을 알게 되었다. 꽃과 잎들이 눈을 즐겁게 한 무대 위 연기자라면, 가지는 그들을 빛나게 한 숨은 연출자인 셈이다. 그래서 ‘황금종려상’은 배우가 아닌 감독에게 돌아가는 게 아닐까?


다시 가지를 바라보았다. 저 검은 가지와 연록의 잎들이 만든 조화의 극치를 보았다. 나무의 정령이 가지마다 꿈틀대고, 검정과 영록이 저렇게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모습을 넋을 놓고 지켜보았다. 나무의 혈관처럼 구석구석으로 뻗어나간 가지의 모습은 그 자체가 경이로운 군무(群舞)였다. 나뭇가지의 검게 그을린 피부와 쭉 쭉 뻗어나간 탄력 있는 몸매가 어쩌면 저렇게 힘차고 아름다울까. 가지마다 자르르 윤기가 흐르는 울퉁불퉁한 근육들이 활처럼 휘고 꺾이며 흘러내리면서 바람 따라 연록의 잎들과 절묘한 춤사위를 밟고 있는 것이다.


산수유, 매화, 벚꽃 같이 한 철 짧게 피었다 지는 꽃들은 가지의 헌신을 모른다. 비바람으로부터, 차가운 세한의 한기로부터 꽃을 보전하려는 가지의 애틋한 헌신을 한철 꽃이 알 리가 없다. 특히 올봄처럼 우르르 떼 지어 몰려왔다 황망하게 떠난 꽃들은 더더욱 그렇다. 입고 나갈 옷이나 탐하는 철부지 자식들 같이 그저 상춘객들과 눈이나 맞추려고 몸치장에나 분주할 뿐이다. 마치 윤중로에 흐드러지게 폈다 진 벚꽃의 화사함처럼 말이다.


자식도 꽃처럼 부모의 시정을 모르긴 마찬가지다. 별이 저 혼자 빛나는 것이 아님에도, 광대무변한 배경을 펼쳐준 밤하늘의 고마움을 까마득히 잊고 지낸다. 세상의 모든 붙박이별, 모든 떠돌이별, 모든 꼬리별로 빛나기까지 꽃은 가지의 헌신에 눈감고, 별은 밤하늘의 노고를 모르고, 자식은 부모의 희생을 까마득히 잊은 채 산다. 그래서 자식들을 가리켜 철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는 한사코 “아직 어려서”라는 말로 눈을 감아준다.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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