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관순 May 28. 2023

복어(福語)와 독어(毒語)

이관순의 손편지[348] 2023. 05. 29(월)

한국인은 심성은 착한 데 거친 입이 문제라고 지적한 사람이 있다. 서울대에서 조선의 유학을 연구하고 이를 기반으로 풀어쓴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의 저자 오구라 기조 도쿄대 교수. 그는 한국인 사회의 특수성을 일본인과 비교했는데, 책을 읽다가 유난히 많은 설화로 문제를 일으키는 우리 사회를 떠올렸다.    

  

한국을 접하는 많은 일본인들이 놀라워하는 것으로 한국인의 거친 입을 꼽았다. 저자는 한국인의 입이 거친 이유를 유교 문화와 사무라이 문화와의 차이에서 살폈다. 일본인은 칼로 싸우는데,  한국인은 말로 싸운다는 것이다. 하긴 칼의 나라 일본에서 입을 마구 놀렸다가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터. 이에 비해 유교문화권의 한국에선 목숨이라도 걸 것처럼 말싸움이 격렬하다. 조자룡의 헌 칼 쓰듯 말을 함부로 휘두른다는 것이다.  

   

담장마다 5월의 붉은 장미가 만개한 날, 한 친구가 모임에 나오지 못했다. 손자를 봐야 한단다. 그 사정을 모를 리 없지만 유독 한 친구가 버럭 소리를 냈다. “그 친구 왜 그리 살아? 그러니 허구한 날 붙잡혀 살지.” 그러자 다른 친구가 “자넨 손자랑 같이 살지 않으니 몰라. 옆에 있어봐 똑같네.” 대화가 손자 양육 논쟁으로 번졌다. “난 그렇게 안 살아. 내가 애를 보면 성을 갈겠다!”라고 선언까지 했다.     


‘눈이 작은 여자와는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라고 한 조카. ‘절대 화장은 안 하겠다’고 했던 친구. ‘난 100세까지만 살 거야! 딱 100세!’ 호언했던 고교 동창... 그런데 어쩌나, 다들 헛맹세가 되고 말았다. 조카는 어쩌면 그렇게도 작은 눈의 여자와 천생연분을 맺고, 뜨겁다고 화장을 입버릇처럼 거부한 친구는 자손들에 의해 화장을 했다. 100세 건강을 장담했던 동창은 아홉 수에 걸려 69세에 심장마비로 떠나고 말았다.     

 

  나이 들며 갖춰야 할 덕목이 ‘절제’이다. 삶에 고루 적용되는 말이지만, 여기에는 ‘조심’하라는 뜻이 있다. 조심 중에는 ‘말조심’이 으뜸이다. 듣는 귀가 둘인데 말하는 입이 하나뿐인 것은 죽은 사람 앞에서까지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죽어도 마지막까지 듣는 귀는 열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수없이 내뱉는 말에는 사람을 살리는 말도 있지만 죽이는 말도 허다하다. 같은 말이라도 누구는 복스럽게 하고, 누구는 싸가지 없이 말한다.      


  말에는 ‘말씨’ ‘말씀’ ‘말투’ 등 세 부류가 있다. 말로 씨를 뿌리는 사람(말씨), 같은 말도 품위 있게 전하는 사람(말씀), 말을 생각나는 대로 툭툭 던지는 사람(말투)이 있다. 그래서 말에도 등급이 있다. 말씀은 말과 다르다. 때때로 어떤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저렇게 살아야 되겠다고 다짐하는 경우가 있다. 이같이 감동을 전하는 사람의 말을 우리는 말씀이라 한다.      


  말로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도 있다. 유치원에서 만난 어린이에게 “야, 너 씩씩하고 멋지다. 이순신 장군처럼 훌륭한 장군이 돼라.”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만난 어린이에게는 “공 다루는 솜씨가 대단하구나. 손흥민 선수 같이 될 것 같다.” 말에 복을 담아 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좋은 언어 습관은 말씨를 잘 뿌리고, 말씀을 잘 전하도록 인도해 준다.      


하지만 생각 없이 말을 하면 한두 마디로도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전철에서 중년 여자가 경로석에 앉은 할머니에게 말을 건넸다. “여든은 돼 보이는데 젊어 보이시네요?” 그런데 할머니의 반응이 시큰둥한 표정이다. 다음 역에서 여자가 내리기 무섭게 할머니가 풀 먹은 소리를 냈다. “그냥 고우시네요 하면 좋잖아. 나이는 왜 물어? 두 살씩이나 더 붙여서. 말을 싸가지 없이 해.”   

   

  우리에겐 책 <꼬마 리콜라><좀머 씨 이야기>로 낯익은 프랑스의 세계적인 그림작가 장자크 상뻬는 자신의 책 <뉴욕 스케치>에서 뉴요커들의 긍정적인 말버릇을 관찰했다. 이를 그림과 문장으로 재미있게 풀어놓았다. 뉴요커들의 말하는 특징은 빤한 얘기를 해도 습관처럼 상대의 말꼬리에 감탄사(!)를 붙이고, 물음표(?)를 달아준다는 것이다. 이때의 물음표와 감탄사는 내 말에 관심을 갖는다는 표시이고, 서로의 이야기를 격려하는 ‘말 효과’를 높여준다.      


이를테면, 누가 “나 지난주에 단체관광으로 스위스 다녀왔거든요. 너무 좋았어요.”라고 말했을 때, 꼭 이렇게 끼어드는 사람이 있다. “난 스위스를 두 번 가봤어요. 스위스는 자유여행으로 다녀와야 제대로 느낄 수 있어요. 알프스 트레킹도 하면서.” 이렇게 말을 받으면 말문을 열다가 주춤해지기 십상이다.      


  이런 경우 뉴요커들은 자기 경험을 내세우지 않고 이렇게 말한단다. “스위스요? 어머, 참 좋았겠다!” “일정은 어땠어요?”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 말머리를 계속 상대에게 돌려주며 묻는다. 물음표와 느낌표를 번갈아 쓰면서. 얼쑤~와 같이 상대의 말에 추임새를 넣어주면서 말하는 사람을 신나게 해 준다. <뉴욕스케치>그리고 있는 뉴요커의 말 습관이 좋아 보이는 이유다.      


우리는 대화를 하면서 느낌표와 물음표를 얼마나 사용할까? 자기를 먼저 앞세워 대화를 하게 되면 상대의 말에 이러한 부호를 찍어주기가 어려워진다. 오늘도 내가 한 말을 돌아보면서 느낌표와 물음표를 달아주는데 인색했음을 깨닫게 된다. 내 말에 감탄하며 나의 감정과 안부를 물어주는 사람만큼 귀한 사람은 없다. 모두가 자기 할 말만 생각하는 세상에서는 더더욱 귀하다.     


 말이란 다듬을수록 빛과 향이 난다. 말할 때는 늘 역지사지(易地思之)가 필요하다. 상대방의 입장을 염두에 두라는 것이다. 적어도 실언이나 허언 같은 말실수는 막아야 할 테니까. 그러다 보면 덤으로 얻는 것도 있다. “어쩌면 그리도 말을 예쁘게 하세요?” “복 들어올 말씀만 하시네요.” 정겨운 말은 모두를 기분 좋게 한다. ‘말은 비단이어야 한다’라는 말이 생긴 이유다.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 편지

작가의 이전글 사랑보다 측은지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