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장을 정리할 시간
이관순의 손편지[362] 2023. 09. 04(월)
시름에 찬,
여름 한(恨) 세월이 간다
물에 잠긴 집들 무너진 집들
산사태에 쓸려간 삶의 터전들
둑은 터지고 다리는 끊어지고
지붕 위로 올라간 소의 수난까지
아버지가 물이 빠진
쓰레기더미 속에서
사진액자를 찾아들고
수건으로 훔치고 한참을 본다
단란했던 시절
사진관에서 찍은 가족사진이다
그 속에 일곱 가족이 웃고 있다
넥타이를 매고 행복한 아버지
오빠가 암으로 이승을 뜰 때도
아들이 힘들다며 어머니가
요양원을 자원할 때도
가족은 웃었다
웃음 속에 흐르는 애잔함이란
한 번 가면 오지 않는 시간이다
백로(白露)가 가까워진 아침
풀잎에는 영롱한 이슬이 맺히고
뜨락 위의 바람은 정갈하고
계절은 이렇게 쉬이 오가는데
철 모르는 가족들은 웃기만 한다
이젠 신발장을 정리할 시간
함지에 가득 물을 받아놓고
현관에 흩어진 신발을 닦아야지
씻고 헹구고 물기를 털어서
가지런히 줄을 세워야지
신발장 위의 박스는 내려서
그 속의 신발은 꺼내놓고
여름 신발은 담아 올려야지
신발장이 정리되는 동안
신발은 새집에 들어갈 생각에
한가슴 부풀고
산만했던 마음은 가을바람에
살포시 부풀고
-소설가/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