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5
은퇴한 친구가 시골에 집을 마련해 내려갔다. 그는 귀촌하면서 두 가지를 꿈꾼다고 했다. 하나는 세계문학전집을 다시 읽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나무를 심고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사는 것이라고 했다. 이사 한 달 뒤, 괴산으로 그의 집을 찾았다. 미처 정리가 안 된 탓일 테지만, 비었던 집을 사람 온기로 채우는 데는 시간이 꽤나 필요해 보였다. 200평의 너른 텃밭은 풀과 나무들로 어지러웠다.
“정신 사납지? 다음에 오면 나아질 걸세.”
친구가 내 입막음부터 했다. 하긴 남의 집에 손댈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연로한 집주인이 서울 아들네로 가면서 세를 놓은 집에 들었기 때문이다.
을씨년스럽던 집안이 갈 때마다 변화가 보였다. 2년 뒤 찾았을 때는 마당과 텃밭 뒤란까지 반듯하게 정리돼 있었다. 시골생활이 싫다던 아내가 내려오고 집도 매입하면서 시골생활이 정갈해 보였다. 친구는 때마다 나무를 심었다. 감나무, 대추나무 같은 과실수부터 심었다. 제사상에 쓰이는 과일을 직접 재배해 올리려는 알뜰한 조상 숭모의 마음이 은연중 배어 있었다. 이어 친구는 계절마다 꽃과 열매를 보려고 매화, 명자, 매실, 살구, 배롱나무, 단풍나무 등을 텃밭에 심었다. 이주 6년 차가 되자 그의 집엔 굵지 않은 대추나무에 꽃이 지면서 콩만 한 열매가 달린 것을 보았다. 비바람 속에 열매들이 여물어가는 걸 보노라면 생명의 경이도 놀랍지만 모진 세월을 견딘 여린 열매가 대견스러웠다. 대추나무는 피는 꽃마다 열매를 맺는 속성 때문에 자손 번창을 기원하는 의미로, 일찌감치 우리네 조상들로부터 제사상 과일로 택함을 받았다.
그의 말처럼 나무를 심는 것만큼 윤리적 생명관에 부합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몸에 기생하고 있는 미움과 증오, 화기를 누그러뜨리고, 아픔을 주었던 사람들을 용서하는 마음을 키울 수 있다면 이만한 자연 친화적 삶도 없어 보였다. 자식들이 짝을 만나서 제 삶을 찾아 떠나자 덩그러니 두 내외만 남은 것은 친구나 나나 처지가 비슷했다. 내 인생은 살뜰하지 못했어도 아이들이 늠름하게 자라 제 갈 길을 찾아간 것이, 대견하고 고맙다는 마음인 것도 나와 친구가 다를 바 없었다.
“사실 사람도 나무처럼 스스로 크는 것이거든. 부모는 그저 걱정할 뿐이지.”
“그렇지. 둘째는 아직 임신 소식이 없나? 결혼한 지 몇 년 됐지?”
“5년째인데…. 자네처럼 아들 딸 하나씩 나주면 좋으련만. 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니.”
친구는 아가가 들어서지 않는 둘째에 대해 연민하는 것 같았다. 대신 집안에 온기를 찾으려고 들인 누렁이가 쑥쑥 새끼를 나주는 것이 흐뭇한 모양이다. 그 사이 새끼를 낳고, 새끼가 새끼를 낳고 낳아 4대째 젖을 물려 살뜰히 기르는 걸 보았다. 몸에 생명을 품고 낳아 대를 잇는 것은 여느 동물이라고 다를 리 없다. 생명체가 지닌 숭고한 본분은 같을 테니까.
‘자식농사 반타작이면 잘한다’라고 했던 시절이 불과 몇십 년 전 일이다. 우리 부모들은 전란과 질병으로, 사고로, 자식을 앞세웠던 아픔을 유난히 심하게 겪었던 세대이다. 삶의 모든 것이 열악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는 지금 들어도 가슴이 저려오는 것이 많다. 생명은 다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나무도 운명이 있는지 살고 죽는 게 각각이란 것을 친구의 설명으로 들었다. 어떤 나무는 심었으나 한 겨울을 못 넘기고 죽고, 영양제 링거까지 주렁주렁 매달아 정성을 쏟는데도 끝내 말라버리는 나무가 있다.
“열을 심으면 서넛은 그렇게 죽는 것 같아. 애써 돌봤는데 나무가 말라죽은 모습을 보면 내 정성이 부족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치 않다네.”
그렇다. 나무는 제가 선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수행자와 같이 서서 시련을 견디며 열매를 얻는다. 모든 걸 바쳐 구한 열매들이니 얼마나 귀한 것인가. 그것이 열매나무의 소명이고 헌신일 것이다. 2월임에도 울안에는 이름 없는 들풀이 숨죽인 채 봄기운을 머금었다고 이 집 안주인이 전해주었다. 자연생도 있지만 안주인이 여기저기서 분양받은 야초가 훨씬 더 많아 보였다.
“약이 없던 시절엔 다 비상약으로 쓰이던 것들이에요.”
안주인이 냉기를 헤치고 여린 몸을 내밀고 있는 야초를 가리키며 설명해 주었다. 농촌에 내려온 지 몇 년 만에 야초에 관한 지식과 지혜가 수준에 이른 것 같았다. 남편은 나무 박사, 아내는 야초 박사가 된 셈이다. 그의 말대로 채 녹지 않은 눈이 쌓인 집에는 봄의 전령사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눈을 헤치니 밟아도 죽지 않는다는 질경이가 모진 생명을 키우고, 돌 틈 사이로 싹을 보인 쑥이며 민들레가 벌써 봄 마중에 나서고 있다.
“자연은 생각지 않은 선물을 안겨요. 좀 있으면 울안은 약초밭이죠. 자라는 모습에서 행복감을 느껴요.”
말하는 친구 아내가 친구보다 더 자연에 심취돼 보였다. 무조건 뽑아내던 풀들이 다 친구가 되었다고 하는 말에서 그런 것을 느꼈다. 오늘은 아무렇게 자란 질경이를 뿌리부터 씨까지 그대로 말렸다며, 생강과 대추를 넣고 우려낸 차를 내왔다.
“토종 허브 차에 맛 들리면 다른 것은 입에 댈 수가 없게 돼요. 싸놓고 마시던 커피 같은 차들은 다 뒷전으로 밀렸어요.”
“우리 이렇게 소꿉장난하며 산다네.”
아내의 자연 예찬에 남편이 추임새를 넣자 모두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하루를 머무는 동안 이런저런 감회가 찾아들었다. 우리 집도 한 때는 시골 생활을 동경했던 적이 있었다. 아이들이 모 두 외국에 나가 살게 되자 아내가 먼저 서울 아파트 생활을 접자고 제의했다. 숙고 끝에 서울 잔류로 결론을 내린 데는 마지막까지 발목을 잡은 아내 때문이었다. 병약한 아내를 데리고 무작정 시골로 내려왔다가 어떤 긴급한 상황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늙으면 병원 옆에 있어야 한다는 의사 친구의 말에 순응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은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자연과 소꿉놀이한다는 친구의 말이 그렇게 곱기도 하고 또 부럽기도 했다. 마치 어릴 적 친구들과 흙 묻히며 소꿉놀이를 하다 엄마가 부르면 다 놓고 돌아서야 하는 인생을 두고 한 말 같아서다. 순박한 친구의 주름진 얼굴이 차창 밖 노을 위로 떠오른다. 서울 있을 때보다 잔병치레도 않고 몸은 더 좋아진 것을 느낀다는 친구 아내의 해사하게 웃는 얼굴이 잔잔한 물결처럼 흔들린다.
“그때 왜 내 결심이 흔들렸을까?” 지레 겁부터 먹고. 때 늦은 후회 같은 것이 잔물결을 일으켰다. 그동안 아내는 몸이 더 안 좋아졌다. 처음 생각대로 눈 딱 감고 그때 자연 속으로 들어왔더라면, 아내 병세가 좋아졌을지 모를 텐데…. 살고 나면 아쉬운 것이 많고 놓친 것도 참 많다. 그래서 인생은 잘 살아도 후회, 못 살아도 후회한다는 말로 위안을 삼는지 모르겠다. (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