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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관순 Oct 01. 2023

비로소 와닿는 시든다는 말

18-14


  낙엽이 지는 늦가을이 오면 생각나는 기억 하나가 있다. 어느 해인가 막내아들 집을 찾은 어머니와 공원을 산책하는데 뜬금없이 “세상이 참 헐거워졌다”라고 말씀하셨다. “뭐가요?” 젊은 아들이 묻지만 어머니는 밍근한 웃음만 지어 보이셨다. 그때는 무엇을 말씀하는지 잘 몰랐다. 이 나이가 돼서야 비로소 그 미소가 머금은 속뜻을 알 것만 같다. 가을 끝자락을 돌다 절로 깨친 것이다. 

  연이틀 추적되던 가을비가 그치자 내 눈에도 문득 세상이 헐거워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낙엽진 나무들이 성글어 보이고, 나뭇잎 틈으로 빼꼼히 보이던 하늘이 빈 가지 사이로 푸르게 드러났다. 공원은 휑해졌으며,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스치는 바람은 스산하기만 하다. 지금은 들에도 산에도 소멸의식으로 가득할 때이다. 그 길을 걷다 문득 그날 공원에서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떠오른 것이다. “너도 살아보면 안다”라고 한 말이. 시든다는 것은 본디로 돌아가기 위해 생명체가 남기는 마지막 경건한 행위이다. 어머니는 그날 자신의 돌아갈 곳을 생각하신 모양이다.      

  한 생을 휘돌았던 뜨거운 피가 빠져나가면서 전하는 마지막 단어가 ‘시듦’이라는 말이다. 시든다는 말을 잇는 다음 단어는 ‘사위다’이다. 소리 없이 불타듯 사그라져서 재만 남는다는. 아쉬울 것도 서운할 것도 없는 일생의 종언인 셈이다. 사람들은 1년이 훅 부는 바람처럼 지나간다고 속절없어 하지만, 누구에겐 그 짧은 시간이 성심을 다해 살았던 살뜰한 생애이다. 어느 시인은 낙엽을 보고 ‘땅에다 맨몸을 뉘고 상처를 묻는다’라고 표현했다. 어쩌면 이 말은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마지막으로 드리는 경건한 미사일 수도 있겠다. 시듦이란 소임을 다한 생명이 자신의 삶을 거두는 일일 테니까. 그래서 ‘잘 시들면 잘 거두는 것’이고 ‘잘 죽으면 복’이라는 말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세월의 속도감은 11월의 끄트머리에 이르면 더없이 빠르게 느껴진다. 엊그제 꽃이 피었다 했는데 여름이 오고, 선선한 바람이 분다 했는데 어느새 단풍이 들더니 그도 잠시, 신산한 빗줄기가 낙엽을 털어낸다. 그리고 앙상한 뼈마디로 남기까지, 나무의 1년은 쉼 없이 돌아온 풍우의 시간임을 알려준다. 우리네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한해 한 주기를 돌 때마다 뜨거웠던 피는 점점 식어져 갈 것이다. 나뭇잎들의 종언처럼 우리도 신음하지 않고 마지막 병자성사를 기구할 수는 없을까.       


  11월의 마지막 주말, 저녁시간에 도봉산을 찾았다. 사람들 소리가 간간이 들릴 뿐 산길은 호젓하기조차 했다. 계곡 물소리가 수척하게 들리고, 돌계단을 내려오는 사람들 표정이 쓸쓸해 보인다. 내딛는 걸음마다 등산화에 낙엽 밟히는 소리가 신음처럼 들렸다. 산행 때면 나무뿌리 밟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친구가 생각났다. 사람들이 등산길에 드러난 나무뿌리를 밟고 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생명에 가하는 인간의 잔악한 행위 좀 보라며 펄쩍 뛰던 친구였다. 그 친구를 생각하면서 그날은 가급적 나무뿌리를 밟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계절의 순환은 늘 마음을 경건하게 한다. 나뭇잎이 돋아날 때의 향긋함, 추석을 앞두고 금초할 때의 알싸한 풀 향기, 늦가을 떨어진 나뭇잎에서 풍기는 농익은 낙엽 향까지, 얼마나 코끝을 홀리고 벌렁거리게 하던가. 푸른 잎 단풍으로, 낙엽으로 이어지면서 사람들 가슴을 어루만지던 잎새의 생은 그래서 경건하기조차 하다.  나이가 들면 아는 게 많아지고 모든 것이 이해될 줄 알았는데, 실은 모르는 게 더 많아지고 이해하려고 애써야 할 것들이 더 많아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동길 박사가 생전에 한 말처럼 취향도 바뀌는 것을 경험했다. 넓은 길보다는 호젓한 오솔길이 좋고, 또렷함보다는 아련함이 좋아졌다. 살가움보다 무던함에 마음이 끌리고, 때로는 지름길보다 에둘러 돌아가는 굽잇길에서 느림의 즐거움을 찾게 된다. 자연이 스승이라는 말은 진리처럼 들린다. 그날 도봉산에서 나에게 깨침을 준 것도 낙엽이었으니까. 나도 저들 나무처럼 지난 1년의 삶을 벌거벗고, 슬픔은 슬픔대로 아픔은 아픔대로 사위어 땅에 묻어야겠다. 그리고 새마음으로  다시 울고 웃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세월이 이렇게 소리 없이 휘감고 돌아가니 변할 것 같지 않던 얼굴도 생각도 변화를 맞는다. 어제는 친구에게 편지를 부치려고 나갔다가 가을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습관처럼 집으로 돌아왔다. 대문 앞에서 주머니에 편지가 그냥 있다는 것을 알았다. 누군가 그런 말을 한 것이 생각난다. 편지를 부치려고 나갔다가 동네만 한 바퀴 돌고 들어왔다면 가을 타는 남자라고. 이래저래 가을도 끝물이다. 내일이면 달력도 마지막 장으로 남을 것이다. 세상뿐 아니라 세월도 헐거워 보이고, 덩달아 나의 마음까지 헐거워 보이는 11월이다.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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