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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관순 Oct 01. 2023

아침고요수목원의 봄

18-13

  

봄이 동사 ‘보다’에서 나왔다고 한다. 어원의 근거가 명확하지는 않으나 우리가 맞은 봄과 딱 떨어지는 말이다. 사계절 중에서 봄만큼 떨림과 울림을 지닌 것이 없다. 생명의 경이를 품고 있으니까. ‘아침고요수목원’에서 봄을 보았다. 봄은 노란색을 앞세워 찾아왔다. 겨울이 미처 다 가기도 전 2월 말이면 노르스름한 풍년화가 피고, 3월 산기슭엔 노란 복수초가 폈다. 언뜻 보기에 민들레와 닮았다. 생강나무에도 동글동글한 노란 꽃이 피어났다. 산수유와 생강나무는 같이 피는 것 같지만 산수유가 일주일쯤 늦는다는 게 원예를 하는 사람들 말이다. 노란 물결이 지나가면 복숭아, 살구, 진달래 등 분홍빛 꽃들이 산야를 붉게 물들인다. 그리고 5월쯤 흰 꽃들이 피기 시작하는데, 봄꽃들의 개화 순서는 평생을 보아도 어김이 없었다.  

  1996년이던가 아침고요수목원이 개원할 때, ‘깊은 산속에 비밀의 정원’이 생겼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가봐야겠다고 메모를 해두었다. 어디서 소식을 알았는지 개원 첫날부터 700여 명의 방문객이 길도 어둑한 가평군 상면 축령산 뒷자락 산속으로 몰려왔다. 내가 찾았을 때는 연 80만 명이 찾는 명소가 돼 있었다. 사설 수목원으로서는 입장객 수가 가장 많고, 그동안 해외로도 소문이 나 있는 참이었다. 4500여 종의 꽃과 나무들로 차 있었는데 10년 만에 다시 가보니 그 규모가 엄청 커져 국내외 내방객수가 연 100만을 훌쩍 넘었다고 했다. 

  봄날 나무에 물이 오른다는 말처럼 신비감을 주는 표현이 있을까. 뿌리에서 끌어올린 수액이 몸통을 타고 올라와 퍼지며 메마른 가지를 살리는 일은, 매년 보는 익숙함이지만 볼 때마다 감탄을 놓친 적이 없다. 추운 겨울에 수액이 흐르면 몸체가 얼어버리므로, 멈추었다가 때를 맞추어 활동을 시작하는 나무들의 천리(天理)에 경탄할 때, 이미 생명의 경이는 온 산으로 정기를 뻗친다. 해마다 반복되는 꽃나무의 개화를 보는 것도 신묘한 일이다. 따뜻한 봄날에 핀 꽃들은, 사실 전 해부터 이미 준비된 것들이다. 작년 가을에 꽃눈을 만들어 저장해 놓았다가 때를 맞추어 눈을 틔운다. 가을이 되면 나뭇잎들이 가지에 잎눈을 남기고 낙엽으로 진다는 것은 경건한 일이다. 새 생명을 잉태시키고 간다는 것이 그러하다. 봄날에 꽃나무들이 꽃을 피우는 이치가 이러할 진데, 마른 가지에 달려 삭풍 한설에 씨눈을 지키는 일은 또 얼마나 숭고한가.      


  대학에서 정년 퇴임한 한상경 교수(원예학)가 필생의 사업으로 전 재산을 쏟아부어 만든 것이 경기도 가평의 아침고요수목원이다. 예전에 화전민이 살았다는 곳이다. 처음엔 대기업을 설득해 볼까 생각도 했다가 꿈이 퇴색될까 봐 포기하고,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진액을 쏟아부어 10만여 평 규모의 수목원을 일구어냈다. 사람의 연약함은 한이 없어도 이처럼 놀라운 경지까지 능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수목원 4계’는 살아있는 철학 선생이다. 식물의 생존 모습들이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때마다 가르침을 전한다.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키 큰 나무의 아랫가지는 세월이 지나면 죽게 마련이다. 나무는 태풍을 맞으면서도 늘 해를 향해 위로 올라가려고 손을 뻗는다. 그 바람에 큰 나무 곁에서는 그늘에 가려 어린 나무가 자라지 못한다. 키를 키우는 나무를 보면서 느꼈다. 나무가 태양을 바라보며 자라는 동안 나무 뒤로 그늘이 점점 커진다는 것을.      

 인간도 존재하는 것만으로 주위에 ‘그늘’을 만들 수 있겠구나. 나도 모르는 사이 남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었겠구나. 그것을 모르고 제 잘난 우쭐함에 빠지진 않았는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나무들이다. 오늘은 나무가 나의 스승인 셈이다. 어느 가을, 상수리나무에서 도토리가 툭 떨어지는 걸 보고 불쑥 ‘왜 열매는 둥글까?’ 생각했는데, 한 교수가 일러주었다. 본체에서 가급적 멀리 굴러가기 위함이란 것을. 고목 곁은 그늘이 져 생육조건이 나쁘다는 걸 도토리가 어찌 알았을까. 

  수목원에는 늙은 고목과 새로 자라는 신생 목이 함께 공존한다. 그래도 눈길이 가는 건 오랜 세월을 품은 나무들이다. 그중에 고목 한 그루. 굽은 몸통과 꺾인 가지엔 지난겨울 쏟아진 폭설과 거센 바람에 부러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친 흔적이 남아있다. 비록 휘어졌을지언정 중심을 잃지 않고 하늘을 보면서 끝까지 오르려는 나무가 고단해 보이기도 하고, 아름답고 숭고해 보이기도 했다. 평생을 흔들리고 살았을 나무도 그 끝은 고요함이다. 남녘을 강타한 제11호 태풍 ‘힌놈나’가 소멸되면서 바다도 본래의 고요함으로 돌아갔다. 사람도 흔들리며 살지만 마지막 찾는 길은 고요한 길로 돌아가는 것이다.       


 지금도 20년 전 한 교수가 들려준 말을 기억하고 있다. 잊고 지내다가도 봄이 되면 꽃과 나무를 보다 보면 살아나는 말이다.  “숲에서는 해마다 삶과 죽음의 주기를 보게 됩니다. 요즘 같은 봄에는 신생의 기운을 느끼지만, 가을 단풍이 마지막을 불태우고 나면 어느 날 찬 서리가 내리죠. 인생이 그런 것 아닌가요.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끝이 있습니다.”     

  자연은 이래서 신묘막측하고 감사의 대상이다. 하루를 별생각 없이 살다가도 툭 떨어진 솔방울 하나, 들꽃 한 송이가 문득 잊었던 자신을 돌아보게 하니까. 아침고요수목원은 지금쯤 화창한 봄 교실로 한창일 것이다. 내가 눈길을 주었던 그 천년향은 아직도 푸른 잎을 내고 있을까? 새들은 예전보다 더 많아졌을까? 흐르는 세월에 시드는 건 사람이나 나무나 똑같다. 때가 되면 모두 고요함 속으로 돌아간다. 저녁노을이 지면 천지에 가득했던 모든 떨림까지 고요함으로 남겠지.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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