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
요즘 젊은이들은 직장 바꾸기를 너무도 쉽게 한다. 큰 고민하지 않고 전철 환승하듯 기회만 보이면 갈아타는데 익숙해 있다. 오죽하면 스펙을 쌓기 위해 이직한다는 말이 돌까. 우리 적엔 입사 순간부터 생존을 위해 층층시하 눈치 보기에 바빴다. 한 번 회사를 선택하면 평생직장으로 알고 자리보전하는 것을 미덕으로 알았는데, 그럼에도 나는 이직을 세 번씩 경험했으니 굳이 따진다면 환경 부적응자인 셈이다.
2021년 코로나가 창궐하면서 2주간 자가 격리를 강제당한 적이 있었다. 크게 아프지도 않은 몸을 생으로 묶이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본래 인간은 헤매는 게 정상이라지만, 나도 꽤나 헤매고 살았다. 헤매도 방향을 잘 잡아 제대로 헤맸어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했다. 후회되는 일들은 모조리 하지 못한 것에 있었다. 실수를 할까 봐 포기하고, 실패할까 봐 망설였고, 그러다 때를 놓치기도 했다. 가족 부양이란 책임 때문에 여건이 받쳐주지 못한 적도 있었다. 인생을 한 걸음씩 확실히 딛고 나갔어야 했는데, 어느 날 언제 여기까지 왔나 싶어 돌아보니 여러 풍경이 엇갈려 보였다. 내가 몰랐던 것, 간과했던 것, 알고도 못한 것들이 어쩌면 그렇게 생살처럼 차오를까?
아쉬움과 후회감이 고요한 마음을 휘저었다. “그땐 그랬었지.”, “그래, 그런 적도 있고.” “그땐 천둥벌거숭이일 때니까….” 까맣게 잊힌 일들이 영화 필름처럼 풀려 돌아갔다. 나 홀로 집에 있던 날, 심심파적으로 떠오르는 후회스러운 일들을 적어보았다. 삼사십 분 동안 떠올린 것이 서른 개가 넘었다. 미래와 연관된 일이 열넷으로 가장 많았고, 주택문제가 일곱으로 뒤를 따랐다. 나머지도 대부분 사람 관계에서 벌어진 일들이 주를 이루었다. 나름 명분이야 다 있었지만 그래도 안 한 것보다는, 길을 잘못 들더라도 시도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완벽하게 하려다가 포기하는 것보다 헤매더라도 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2년을 소진하고 맞은 2022년 연말에, 부산에서 옛 친구를 만났다. 해운대와 자갈치 시장을 들려 저녁을 먹으면서 긴 시간을 친구와 함께 했다. 그리고 친구와 헤어져 호텔로 향하다 밤바다에 흐르는 불빛을 보았다. 바다 건너 영도 앞바다에 떠 있는 불빛이었다. 자석처럼 나의 눈길을 빨아들이는 저 불빛... 찰랑이는 밤물결 위로 선명하게 빛나는 저 불빛은 단순 명료한 일곱 글자 문장이었다.
‘그때 왜 그랬어요.’
짧은 텍스트만으로 사람들의 의표를 찌를 수 있는, 영롱하고 명징한 문장이 나를 향해 서 있었다. 서서히 불빛 자력에 끌려 마음이 도리질을 시작했다.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고 단단히 봉인해 둔 것들이다. 섣불리 손을 뻗었다가 파동을 일으킬까 봐 후회는 후회대로 아픔은 아픔대로 묻어두었는데, 문장이 보내는 강력한 파장에 감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회한의 그림자가 영도의 불빛을 타고 흘렀다. 불빛은 묘하게 생각의 삼투작용을 일으켰다. “당신을 잘 모르겠어요.” “아빠! 그때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그전엔 내게 안 그랬잖아?” 아내가 묻고, 아들이 묻고, 지금은 저 세상 사람이 된 친구가 물어왔다.
해운대 밤바다를 다녀간 사람이면 저 물음에 답했을 것이다. 떠난 사람에 대해, 실패한 일에 대해, 깨진 우정에 대해, 누구는 부모님을 떠올리고 자식을 떠올리고, 먼저 세상을 뜬 남편이나 아내를 생각하면서 무수한 상념으로 갈래를 쳤을 것 같다. 나의 인생에서 가장 슬픈 세 가지는 ‘할 수 있었는데’, ‘해야 했는데’,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로 나뉜다. 그날 밤 나는 이 세 가지 슬픈 물음에 번갈아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후회스러운 것들이 이 세 가지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인생을 잘 살아도 못 살아도 회한은 남는다. 굳이 성공한 삶을 나의 경험으로 따진다면, ‘때를 지켜 잘 사는 사람’이 성공한 삶이 아닌가 싶다. 잘 산다는 것은 그런 것 아닐까. 내가 어느 때를 지나는 지를 알고 그때를 자기 다움으로 살아내는 것. 꽃이 철을 찾아 피듯이, 철을 지켜 산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또 어려운 일이다. 모든 후회나 회한은 대부분 때를 잊거나 지키지 못한 데서 시작되니까.
이 시대의 아픔은 모든 세대가 자기 때를 지켜 자기 다움으로 살지 못하는 데 있다. 젊은이가 꿈을 상실하고 세상 눈치나 슬슬 본다거나, 장년은 장년 다움을 깨치지 못하고 박약하거나 맹종으로 자존감을 잃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한 번뿐인 때와 기회를 훅 날리면 인생의 ‘화양연화(花樣年華)’는 깃들 곳이 없게 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잘 익어간다는 것이고, 잘 익는다는 것은 성숙해진다는 의미이다. 누구는 나이가 든다는 것을 옻칠을 더하는 것이라고 은유했다. 옻칠은 더할수록 내면의 빛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노년이 되면 종종 허무감에 젖을 때가 있다. 이룬 것이 없으면 허망한 생각이 더 빈번해진다. 마땅히 할 일까지 없으면 삶이 우울하고 곤고해진다. 이렇게 마음에 그늘이 들기 시작하면 절망에 이르는 병도 찾아든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든 대로 때가 있고 삶이 있다. 늙어서도 내가 세상의 주인이고 어른이라는 행세를 하려고 하면 몸은 더 지치고 고달파진다. 세상의 주인 된 자리는 후대에 내주고 나는 그들을 돕는 수단이기를 자원하거나, 누군가의 기쁨이 되는 존재로 나서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다. 나이가 들수록 생의 보람을 나에게서 찾지 말고, 누군가의 필요한 존재가 되어 줄 때, 삶의 기쁨과 자존감을 끌어올릴 수 있다.
부산 밤바다에서 한참을 바라보았던 그 문장. ‘그때 왜 그랬어요.’ 설치미술가 이광기의 작품이란 것을 후일 알았다. 채워질 수 없는 일상의 공허를 가진 사람이라면 나처럼 이곳에서 흔들려 보시라. 문명과 자연이 함께 파도치는 해운대 밤바다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부산이 주는 낭만이다. 누군가에게 아픈 상처를 남겼을 이들에게는 반성의 시간이 될 것이고, 원망과 미움을 품은 사람들에게는 용서와 화해의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 사물의 가치가 생각하는 마음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해운대를 떠날 즈음, 긍정적이고 희망찬 문장 하나쯤 건질 수도 있으리. (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