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희망을 얘기하는 이유
이관순의 손편지[40]
희망을 이야기하면 거부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희망 좋은 것 누가 모르나? 하며 ‘희망피로증후군’을언급하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선동으로 꿈이나 희망에 잔뜩 부풀어 따르다가 피로와 상처만 안고 주저앉기 십상이라는 경험 때문입니다. 그러니 희망을 부풀리거나 강요하지 말라는
얘기지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공감은 하되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바로
희망의 비밀 때문입니다. 그 안에는 신비한 힘이 숨겨져 있으니까요. 이를
알면 어떤 난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희망에는 엄청난 내재된 힘이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을 느껴보라는 거죠.
지금 내 앞에 절망적 상황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선택은 세 가지 뿐입니다.
<관망, 절망, 희망>. 무엇을 선택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관망’은 사태를 주시하며 관찰하는 거죠. 관망을 선택하면 상황이 전개되는 양상에 따라 잘 되기도 하고 못 되기도 합니다. 관망 자세만으로도 아직 기회는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절망을 택하면 어떻게 될까요? 순식간에 다리가 풀리며 의욕이 꺾입니다.
사기가 저하되니 일이 풀릴 기미보다는 사태 악화를 부채질하기 십상입니다. 아직 남아있는 기회마저 날리는 꼴이 되지 않을까요. 최악의 선택입니다.
그런데 ‘희망’을 선택하면 전혀 달라집니다. 주먹을 쥐게 하고, 기운을 모아주고, 주변의 도움을 끌어들입니다. 최악의 상황도 뒤집을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줍니다.
그래서 동서고금의 현자들은 ‘희망이 최선의 선택, 최상의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이 비밀스런 말에 주목한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희망은 인간의 행위 속에
들어있는 ‘신적인 힘’이다”라고 정의합니다. 희망과 꿈은 동의어죠. 이 말에는 “우리의 꿈속에 신적인 창조력이 깃들어 있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이 놀라운 비밀을 일찍이 눈치 챈 사람은 월트 디즈니입니다. “꿈꾸는 것이 가능하면 그 꿈을 실현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주장했으니까요.
디즈니는 꿈의 실현 가능성을 스스로 입증한 인물입니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더 많이 주고 싶어 미 플로리다 주에 디즈니랜드 건설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고령으로 완공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죽고 말았지요.
개장하는 날, 단상에 오른 한 연사는 “오늘 같은 날 월트 씨가 살아있다면 이 공원의 놀라운 모습을 볼 텐데” 하며 아쉬워합니다.
다음 연사로 단상에 오른 사람은 월트 디즈니의 부인입니다. 그녀는 앞선 연사의 말을 이렇게 바꾸어 놓습니다. “남편은 이미 보았습니다. 디즈니랜드는 남편이 미리 본 것을 나중에 만들어냈을 뿐”이라고 말이죠.
우리가 희망 속에서 충분히 본 것은 언젠가 그렇게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디즈니의 꿈은 바다 건너 이야기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희망, 절망, 관망, 사이를 오가고 있다면 희망을 선택하라고 권합니다.희망은 지금 당신 곁에 와 있으니까요.
소포클레스는 ‘인류의 대다수를 먹여 살리는 것은 희망‘이라고 했습니다. ‘공상은 지식보다 중요하다’고 말한 이는 아인슈타인입니다. 공상의 산물이 과학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폴레옹도 ‘인류는 공상에 의해 지배된다’고 말했습니다.
세계의 큰 역사는 꿈으로 잉태하여 희망으로 이어져갑니다. 제철공장에 가장 큰 재앙은 고로에 불이 꺼지는 것입니다.
사람도 존재하기 위해서는 희망의 불을 꺼뜨리면 안 됩니다. 그 불이 꺼지면 생명도 꺼지게 됩니다. ‘꿈 공장’을 쉼 없이 가동해야 합니다. 희망은 우리의 심장이니까요.
*(소설가/daumcafe leeletter)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