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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나 Oct 17. 2020

니들이 게 맛을 알아?

  오래전 가족이 함께 2년간 미국에서 지낸 적이 있다. 남편이 근무하던 스미소니언 해양연구소가 있는 아나폴리스에 우리 집이 있었다. 워싱턴 D.C.에서 50번 국도를 타고 동쪽으로 한 시간쯤 차로 달리면 메릴랜드 주 수도인 아나폴리스가 나온다.     

  이 도시는 대서양으로 이어지는 체사픽크 만에 접해 있다. 알렉스 헤일리 ‘뿌리’에서 나오는 주인공 쿤타킨테를 싣고 온 노예선이 들어 온 항구이기도 하다. 18세기부터 조성된 유럽풍의 다운타운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농장주의 으리으리한 저택부터 노예들의 손바닥 만한 집까지. 그래서 미국 내 여행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이 곳에 유명한 것이 또 있다. 올드베이 시즈닝이라는 양념을 듬뿍 친 게찜인데,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다. 고춧가루, 후추, 파프리카 파우더, 샐러리 소금이 재료인 올드베이 시즈닝과 강한 스팀으로 익힌 게의 조합인데, 어떤 사람은 그 맛이 환상적이라고 한다.     

  이것은 블루크랩이라는 게를 가지고 만든다. 블루크랩은 체사피크 만 부근에서 많이 잡히며, 생김새와 맛은 꽃게와 비슷하다. 좀 다른 점이 있다면 살아있을 때 꽃게보다 푸른빛이 많이 난다. 아마 게의 먹이가 되는 플랑크톤의 종류가 서로 달라서 그런 듯하다. 우리 가족은 봄, 여름이면 크랩을 잡을 수 있는 동네 바닷가로 간다. 준비물도 간단하다. 노끈, 닭다리 몇 개, 뜰채, 양동이 정도면 오케이.     

  우리가 자주 가는 곳은 동네 사람들이 요트를 정박하는 작은 부두다. 나무판으로 바닥과 난간이 안전하게 만들어져 있는 조용한 공원 같은 곳이다. 남편과 아이들은 닭다리를 매달은 노끈의 한쪽을 난간에 묶는다. 닭다리 쪽은 물속에 던지고 나서 끈의 움직임을 조심스레 살핀다. 그러다 게가 고기를 물게 되면 끈이 조금씩 움직인다. 조용히 지켜보다가 물속의 게가 닭고기에 푹 빠져 경계를 늦추는 순간, 끈을 살살 잡아당긴다. 그 다음 바로 뜰채로 빠르게 떠 올려야 한다. 약아빠진 게를 잡으려면.      

  아이들과 함께 놀이처럼 즐기면서 잡은 게가 양동이 반 쯤 차면 집으로 가져와 요리를 한다. 블루크랩을 찌면 꽃게처럼 게 껍질이 붉게 변한다. 여기에 맵고 짜고 독특한 향이 나는 올드베이 시즈닝을 넣는다. 맥주와 함께 먹으면 궁합이 잘 맞고 중독성까지 있다.      

  블루크랩 찜을 동네 매장에서 사서 먹기도 했다. 그 때는 꼭 시즈닝을 적게 넣으라고 부탁을 한다. 현지인처럼 양념을 먹었다가는 입 안이 따끔거릴 정도로 얼얼해지니까.      

  그러고 보니 남편은 늘 게를 좋아했다. 올해는 꽃게가 풍년이라 벌써 열 차례 정도 사온 것 같다. 찜을 해서 올드베이 시즈닝과 함께 먹기도 했고, 양념게장도 두 차례나 담궜다. 황기까지 넣어 만든 양념간장에다 게를 3일 동안 두었다가 다시 간장을 끓여 식힌 후 3일간 담궈 둔다. 이렇게 맛이 들은 게를 냉동실에 보관 중이다. 요즘 하나씩 꺼내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자주 식탁에 올라온 게장을 보고 아들이 시큰둥해 했다. 이 때 남편이 한 마디 한다. "니들이 게 맛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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