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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나 Oct 17. 2020

차갑고 깊은 맛, 고염

  어릴 적엔 늘 방학을 기다렸다. 그래야 외할머니 댁에 갈 수 있었으니까. 용감한 초등학생 언니가 날 데리고 다녔다. 용산 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엄마가 데려다주셨지만 그다음부터는 우리가 알아서 갔다. 엄마는 우리가 시골에 갈 때마다 이런저런 간식거리들을 챙겨주셨다.      

  시골에 도착해서 좀 지나면 서울에서 가져온 간식들이 금방 동이 난다. 그다음 간식은 고구마, 밤, 감, 떡.... 이런 것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어렴풋이 하얀 목화 열매도 먹었던 기억이 난다. 비릿한 단맛이 났던 것 같다.      

  외갓집에서 먹었던 간식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차고 달콤한 고염이었다. 나중에 보니 사전에는 고욤이라고 표기되는 과일이었다. 고염은 감과 비슷한 종류이지만 감보다는 크기가 작다. 할머니는 이 열매를 가을에 따서 보관하신다. 그리고 숙성된 고염을 추운 겨울밤에 간식으로 주셨다. 한 숟가락 입에 떠 넣으면 차갑고 깊은 단맛이 혀에 닿는다. 목으로 넘어갈 때까지도 시원하다. 정말 꿀맛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그 맛을 보지 못했다. 할머니가 안 계신 외갓집에서 나에게 고염을 챙겨준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아무튼 고염을 맛볼 기회는 없어졌지만 추억 속의 그 맛은 늘 기억 속에 살아있다.     

  몇 년 전 지인의 농장에서 우연히 고염을 보게 되었다. 얼른 따서 한 입 물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주시던 그 고염 맛이 아니었다. 텁텁하고 떫고 그랬다. 이렇게 먹으면 제 맛이 나지 않는 거였다.     

  나중에 알아보니 할머니의 맛있는 고염 비결은 따로 있었다. 우선 늦가을 잎이 다 떨어진 고염을 따서 오지항아리에 차곡차곡 담는다. 이것이 차츰 발효되면서 나중엔 죽같이 된다. 그러다 추워지면서 반쯤 얼게 되는데, 이게 무지 달콤하다.      

  올해는 지인에게서 고염을 구해보려 한다. 집에 오지항아리는 없지만 유리그릇이라도 이용해봐야지. 이걸 김치 냉장고에 넣어서 잘 숙성시키면 달고 차가운 고염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요걸 숟가락으로 떠먹으면서 돌아가신 할머니, 엄마 생각에 잠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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