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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나 Oct 29. 2020

메멘토모리

  “지혜로운 사람은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눈앞에 보이는 즐거움 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성경 전도서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라는 뜻의 라틴어 메멘토 모리와 비슷한 의미를 갖고 있지요. 어감은 좀 부담스럽지만, 난 이 말을 늘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래야 순간순간 마음속에 생기는 우쭐대는 감정, 사람에 대한 실망, 분노 같은 감정들을 조절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얼마 남아있을지 모르는 이 세상에서의 시간을 이런 감정들로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요.

       

  어쩌다 친구에게 ‘아침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일 수 있다’는 말을 마음에 새긴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좋은 것만 생각하며 살아도 짧은 인생인데, 죽음을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죽음을 기억하며 사는 것은 무섭고 싫다고 하면서요. 평균수명도 길어지는데 벌써 죽음을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 친구 말에 한편 공감을 하면서도, 죽음을 기억하며 사는 하루하루가 더 알차고 의미 있게 느껴집니다.

         

  일곱 살 많은 언니가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친정 엄마처럼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던 언니가 몇 년 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뭐라고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오랫동안 슬펐습니다. 갑자기 아무 말도 못 하고 떠나가는 언니의 심정을 생각하면 얼마나 기가 막혔을지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언니가 세상을 떠나고 한참 지나서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 시점이 언니가 세상과 이별하는 가장 적당한 시간이었나?’ 언니도, 나도 잘 모르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든든한 버팀목이던 언니의 죽음은 충격이었습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가장 오래 함께 했던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맘의 준비를 못 한 이별이라 그런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동생에게 언니처럼 든든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미혼인 조카 둘은 어쩌나! 까다로운 형부가 조카들을 힘들 게 하면 어쩌지?’ 이런저런 걱정이 있었지만, 우리들은 각자 슬픔의 무게를 잘 버티며 살았습니다. 큰 조카는 바로 아내감을 만나 결혼을 하며, 언니의 빈자리를 채우기도 했고요.

     

  엄마,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를 생각해 봅니다. 이젠 영영 이별이구나, 불쌍한 고아가 되었다는 생각에 많이 슬펐죠. 엄마와의 이별은 맘으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시력 약화, 신장투석 등 당뇨 합병증으로 고생하셨거든요. 병원에 누워 계시던 엄마는 내가 둘째를 출산하자마자 돌아가셨습니다. 내게 새 생명이 오자 엄마는 떠나가셨습니다. “온달 같은 우리 엄마야, 반달 같은 나를 두고서 하늘 길이 얼마나 멀면 한번 가면 못 오시나요.” 어릴 적 불렀던 노래 가사처럼.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십년 동안 홀로 꿋꿋하게 사셨습니다. 동네에서 유일한 공무원 연금수급자인 아버지는 노인회장을 맡고 계셨습니다. 맘씨 좋은 아버지가 노인들 중에서는 경제력이 있었던 까닭이겠죠. 담배로 인한 만성 폐쇄성 폐질환으로 세상을 떠나셨을 때, 동네 할아버지들의 상실감도 크셨던 것 같습니다. 진짜 고아가 된 슬픔에다 후회도 많았습니다. 어차피 끊지 못 할 담배였는데, 좋아하시던 담배 한 보루라도 선물할 걸 그랬어요. 담배 피지 말라는 잔소리를 많이 했던 것도 후회가 되더군요.

     

  뒤돌아보면 하루하루가 기적같이 살아온 시간들입니다. 내일을 기대하며 그동안 바쁘게 살아왔지요. 어쩌면 오지 않을 내일일 수도 있는데 말이죠.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도 언제든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자주 잊어버립니다. 그 순간엔 천년만년 살 것처럼 죽음에 대해선 아무 생각이 없어집니다. 그럴 때 불필요한 욕심이 생기기도 하고요. 세상 떠나기 전까지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따뜻한 추억거리를 많이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언니처럼 황망한 이별은 피하고 싶어요. 언제 죽음을 만나든지 겁먹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달라이라마는 “죽음이란 낡은 옷을 벗는 것”이라 했대요. 죽음을 맞이할 때 낡은 옷을 훌훌 벗는 맘으로 하늘 여행을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맘으로 하루하루 살다 보면 내 영혼도 더 성숙해질 것 같아요.


  오늘도 ‘메멘토 모리’를 떠올립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 부리지 않으려고요. 그러다보면 어제보다 조금 나은 오늘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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