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은나 Oct 17. 2020

상큼한 바다향의 추억 - 해삼과 멍게

  뱃속의 아기는 엄마의 식성도 바꾼다. 육식성인 나로 인해, 비린 것을 싫어하던 엄마 식성이 임신 중에는 바뀌었다고 했다. 어릴 적 시장 앞에서 팔던 해삼을 보면서도 군침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 어떤 날은 판자 위에 납작하게 늘어져 있던 해삼을 사 먹기도 했었다. 주 고객인 남자 어른들 사이에서 옷핀을 길게 펴 만든 꼬챙이로 난 토막 낸 해삼을 초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아버지는 5원 정도의 용돈을 가끔 주셨다. 난 이 용돈을 받으면 해삼을 사 먹으러 갔다. 상큼한 바다향도 좋고, 오돌오돌한 식감이 좋아서. 어쩌다 용돈을 10원 받는 날도 있었다. 그러면 간식이 10원짜리 멍게로 업그래드 되었다. 멍게를 다듬을 때, 먼저 잘려서 나오는 꼬다리가 있다. 여기에 붙은 멍게 살도 꼭 빼먹는다. 아주 맛있다.     

  40년 전 대학교 3학년 때 난생처음 제주도에 갔었다. 그때 해녀가 갓 따온 싱싱한 해삼을 처음 보았다. 탱탱한 공 모양이었다. 칼로 자른 해삼의 단면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원모양이었다. 전에 먹던 해삼보다 싱싱하고 식감도 좋았다. 어릴 적엔 퍼진 해삼 이어도 좋았는데.... 교통이 좋지 않던 60년대 중반, 그렇게라도 우리 동네 시장까지 온 게 어디야!      

  한 때 통영에 살았던 적이 있다. 통영은 멍게가 많이 나는 곳이다. 거기선 멍게를 우렁쉥이라고도 부른다. 껍데기는 빨갛고 젖꼭지 같은 돌기가 울퉁불퉁하게 나있다. 집에서 손질할 때는 흡착 뿌리의 반대편, 입 부분을 먼저 잘라낸다. 그 구멍에 손을 넣어 노랗고 주황빛이 도는 속살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실오라기처럼 생긴 내장을 빼낸다. 알싸한 맛이 없도록.      

  해마다 봄철이 되면 멍게를 대량으로 구입했었다. 상큼하고 향긋한 멍게를 우선 몇 차례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그다음 일부는 멍게젓을 담는다. 땡초라고 부르는 청량고추도 잘게 썰어 넣고, 갖은양념에 액젓으로 간을 한다. 상온에서 삭히는 젓갈이 아니기 때문에 2주 내에 먹을 분량은 냉장고로, 나머지는 냉동실에 둔다. 이걸로 멍게비빔밥을 만들면 좋다.     

  부천으로 이사한 후로는 멍게젓을 담그질 못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져서 그런 것 같다. 제철이 언제였는지도 모르게 지나가 버렸다. 마트에서 살짝 본 적은 있는데, 왠지 손이 선뜻 가질 않았다.      

  내년 봄엔 통영 멍게를 택배로 주문해 봐야겠다. 회로도 먹고, 멍게 젓갈도 만들고. 내가 좋아하는 멍게 죽도 끓여야겠다. 멍게 죽은 멸치 다시마 육수에 다진 마늘, 파, 생강, 당근, 국간장을 넣고 끓인다. 색깔도 예쁘고 맛도 매력적이다. 난 이걸 먹고 나면 기운이 난다. 그래서 자꾸 끌리는 것 같다. 체질에 맞는 음식이라 그럴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