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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나 Nov 07. 2020

아아! 낭~트

프랑스 이야기 2

 “낭트 부탁합니다.(Nantes, s'il vous plait.)”라고 분명히 역무원에게 말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알아듣지를 못한다. 자꾸 어디 가냐고 묻는다. “낭트”라고 다시 몇 번을 말한 뒤에야 “아~ 나앙트.” 비음 섞인 발음을 하면서 표를 주었다. ‘치~, 낭트가 낭트지, 뭐가 다르다는 거야.’ 살짝 기분이 나빴는데,  그 역무원이 정말 알아듣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나중에서야 들었다.


파리 서남서 방향에 위치한 낭트를 가려면 몽파르나스 역으로 가야 한다. 파리는 목적지에 따라 출발 기차역이 다르다. 몽파르나스 역(Gare de Montparnasse)은 주로 파리의 서쪽 지방으로 가는 기차가 출발하는 곳이다. 파리에는 각 지방으로 가는 기차역이 7개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몽파르나스 역이다.


낭트는 일 년 내내 비가 고르게 내리는 서안해양성 기후 지역이다. 내가 머물던 겨울철 1주일 동안 맑은 날은 딱 하루였다. 1월인데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애완견이 많다 보니 거리에는 개똥이 널려있고, 비를 맞아 부푼 개똥에서는 역겨운 비린내가 났다. 31년이 지난 지금도 그 냄새를 생각하면 속이 우글우글하다. 파리 샹젤리제 거리를 지날 때도 개똥이 많았었다. '프랑스는 개똥 천지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땐 그랬다.


낭트 시내 중심에는 브르타뉴 지방을 다스리던 공작이 살았던 브르타뉴 성이 있다. 고풍스러운 성을 보면 낭트칙령, 앙리 4세.... 학교에서 배웠던 이런 것들이 떠올랐다. 성을 중심으로 번화가가 있었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엔 어김없이 구걸하는 이들이 있다. 여기선 기름이 번지르르 흐르는 애완견을 끼고 앉아 구걸하던 20대 초반의 아가씨가 있었다. 아까운 노동력이다.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에 낭트대학교가 있다. 이 대학교 식당에서 점심 먹을 기회가 있었다. 400명 이상 들어가는 큰 규모의 식당에서 학생들과 함께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그 옆을 보니 비슷한 규모의 학생식당이 또 있었다. 큰 식당 규모에 놀라고, 새치기하는 학생들을 보고 또 놀랬다. ‘선진국이라면서.... 이게 뭐야!’ 그런데 긴 줄을 함께 서 있던 학생들은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사람이 바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나!


차례가 되면 맘에 드는 요리가 담긴 접시 세 개를 골라 쟁반에 담는다. 각 식탁 옆에는 높이가 1m 정도 되는 빨래 바구니처럼 생긴 커다란 바구니에 잘라놓은 바게트가 가득 담겨있다. 맛 좋은 바게트를 먹고 싶은 만큼 맘대로 먹으라는 뜻이겠지. 가격 대비 정말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눈에 보이는 시설이나 학생 복지는 프랑스가 확실히 선진국이다’는 생각을 했다.


짬이 나면 자주 슈퍼마켓에 가서 다양한 물건들을 구경했다. 어떨 때는 프랑스 아줌마가 내게 자기가 고르고 있는 물건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다. 익숙하게 물건을 고르는 내 모습이 믿을 만해 보였는지.... 이런 경우를 대비해 준비해둔 말이 있다. Je ne parle pas francais.(나 프랑스 말 못 해요.) 그리고는 살짝 미소를 짓는 게 내 필살기다.


길고 짧은 모양의 쌀이 수십 가지나 되는, 쌀 구경도 재미있고 부위별, 크기별로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는 육류 냉장 칸도 신기했다. 그때까지 난 동네 정육점에서 그때그때 잘라서 팔던 고기만 보아왔었다. 다양한 포도주 하며, 쵸코렛 종류는 어찌 그리 많던지.... 그때 내가 알던 초콜릿은 고작 님에게 초콜릿과 가나 초콜릿이 전부였다.


‘프랑스는 온대기후 지역이라 카카오 생산이 안 되는데, 무슨 쵸코렛이 이렇게 많을까? 열대 기후의 과거 식민지에서 가져온 카카오를 이용하는 것이겠구나.’는 생각이 드니까, 달콤한 초콜릿을 고르면서도 좀 씁쓸했다. 문득 파리 콩코드 광장에 버젓이 서있는 이집트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가 생각났다.


대학가를 지나다니다 보면 흑인 대학생들이 꽤 많았다. 왠지 프랑스어를 쓰는 중부 아프리카 출신일 것 같았다. 프랑스가 차지했었던 중부 아프리카는 아직도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상류층 대부분이 프랑스 유학을 선호한다고 한다. 식민 지배는 끝났지만 아직도 프랑스의 영향권 아래 있는 듯하다. 식민지 종속관계를 끝내기가 그리 쉬운 게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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