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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나 Nov 05. 2020

이씨 비시, 이씨 비시

프랑스 이야기 1

1989년 여행 자율화가 시작됐던 해, 처음 해외여행을 갔습니다. 그때 파리에서 떼제베 (고속철도)를 처음 타봤어요. 비시를 향해 남쪽으로 시속 300km 이상 달리는 기차였죠. 차창 밖의 이국적인 풍경은 엄청 빠르게 휙휙 지나가더군요. 30년 전, 나에게 이런 속도감은 신기방기한 경험이었습니다.

      

 “Ici Vichy, Ici Vichy.” (여기는 비시, 여기는 비시) 기차가 목적지에 다다르자 안내 멘트가 나옵니다. 리듬감 있는 프랑스어가 마치 새소리처럼 들리더군요. 기차역을 나와서 다운타운 쪽을 바라보니, 처음 본 프랑스풍 크리스마스 장식이 눈에 먼저 들어왔습니다. 도로 양 옆과 위쪽이 연결된, 마치 개선문처럼 생긴 장식들이 반짝이며 쭉 정렬해 있었어요. 날 반기듯이....    


비시가 한 때 프랑스 수도였던 걸 알고 있나요? 2차 세계대전 중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했을 때, 비시를 수도로 임시 정권이 세워졌어요. 비시 프랑스(Vichy France)라고도 부르는데, 나치와 공조하던 정권이었죠. 프랑스의 흑역사입니다. 비시 정부 청사이었던 건물이 50년이 지난 그 당시, 내 눈 앞에서는 고풍스러운 고급 호텔로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비시는 프랑스 중부에 위치한 인구 2만이 조금 넘는 작은 도시입니다. 유럽의 여느 동네처럼 아침이면 고소한 빵 냄새가 식욕을 자극하고요, 부지런한 치즈 가게 아저씨는 일찍부터 가게 문을 열고 청소를 시작합니다. 까만 바지에 하얀 셔츠를 입고, 작은 앞치마를 깔끔하게 두르고 말이죠. 그 모습에서 직업의식이 투철한, 치즈 전문가 같은 포스가 느껴졌어요.     


이원복 교수의 ‘먼 나라 이웃 나라’에서 본 프랑스 치즈 이야기가 생각났어요. 프랑스에는 400가지가 넘는 치즈가 있다고 했는데.... 비시의 치즈 가게 역시 수많은 치즈가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중 내가 많이 먹었던 것은 큐브 모양의 치즈였어요. 포도주 안주로 안성맞춤이거든요. 메주 덩어리 같이 생긴 치즈는 손님이 원하는 양만큼 잘라서 팔고 있더라고요. 난 신기한 듯 구경만 했죠.   

 

여기에 베트남 식당도 있었어요. 그 당시 한국 식당은 파리에만 한두 개 있을 정도였는데, 이 작은 도시에 베트남 식당이 있는 게 의아했지요.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지였으니까, 베트남인들이 프랑스로 이주할 가능성이 아무래도 많았겠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친숙한 느낌이 들어 베트남 볶음밥을 먹어보았는데, 맛은 기억에 없네요. 


비시는 온천수가 유명합니다. 그래서 나폴레옹이 일부로 찾아왔었다고 하네요. 이 곳의 광천수는 우리나라 슈퍼마켓에서도 팔리고 있고요, 광천수를 활용한 화장품은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은가 봅니다. 이 화장품은 피부 재생효과가 좋다고 하네요. 시내 한 복판에는 잘 꾸며진 급수대가 보입니다. 여기 수도꼭지를 틀면 광천수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어요.     


비시는 시민들을 위한 공원과 다양한 운동시설이 잘 갖춰진 도시입니다. 널찍한 실내 테니스장에서 운동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그 당시 우리나라와 자꾸 비교하게 되더군요. 많이 부러웠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그곳에 있다면, 그때만큼 부러워하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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