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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나 Nov 04. 2020

화로 위 청국장찌개


큰집을 생각하면 청국장 냄새가 먼저 떠오른다. 큰엄마가 차려주시던 겨울철 밥상에는 단골로 청국장찌개가 올라왔다. 상이 차려지기 전에는 방안 화로 위에서 보글보글 얌전히 끓고 있다가 밥상이 들어오면 상 위로 옮겨졌다. 그래서 밥을 먹던 큰집 안방은 항상 청국장 냄새가 배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이 되면 사방에 흩어져 살던 사촌들이 경기도 용인 큰집으로 모였다. 사촌 언니 오빠들을 만나서 나눴던 이야기들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깔깔깔 웃었던 웃음소리는 기억에 남아있다. 그때 함께 먹었던 군고구마, 겨울 무의 달콤함도 입 안에서 맛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곳에 머무르던 시간은 정말 후다닥 지나갔다.    

큰아버지와 큰엄마는 한국전쟁 통에 아들딸을 모두 잃고 두 분만 살고 계셨다. 심성 착한 큰아버지와 부지런한 큰엄마는 우리들을 위해 언제나 많은 음식을 준비하셨다. 인절미를 만드시려고 나무절구 앞에 마주 서서 찹쌀밥을 찧던 두 분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나의 아버지가 6형제 중 막내니까 큰 아버지와 나이차가 많았다. 그 당시 큰아버지, 큰엄마는 모습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분명 할아버지, 할머니셨다. 인자한 얼굴로 내가 무언가 얘기하면 그냥 웃으면서 잘 들어주셨다. 두 분은 나에게 다정하고 포근한 할머니 할아버지였던 것 같다.    


어릴 적에 음식을 많이 가렸었다. 우리 집에서는 엄마가 끓여주던 된장찌개도 잘 먹지 않았다. 그런데 큰엄마표 청국장찌개를 내가 먹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내가 그걸 먹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세월이 흘러 언젠가부터 청국장찌개가 좋아졌다. 정겨운 맛으로 느껴졌나! 어릴 적 큰집 생각을 나게 한다.  

   

서울 집으로 돌아갈 때 두 분께 인사를 드리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허리가 굽어진 큰아버지가 안쓰러워서 그랬는지, 아니면 큰엄마가 외로워 보여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서울로 가는 버스가 출발하고 나서 창 밖 큰아버지의 모습을 보면 또 코끝이 찡해졌다.  

   

건너편에 보이던 든든한 산처럼 두 분도 항상 그렇게 계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큰엄마가 독조봉이라고 알려주신 그 산봉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그곳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가끔 용인에 가면 부모님 산소 옆에 있는 큰엄마 큰아버지 산소를 찾는다. “저 왔어요.” 인사를 하면 두 분은 여전히 반갑게 맞아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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