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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나 Nov 04. 2020

보약 같은 돼지국밥

돼지국밥은 보약 같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부산으로 이사한 첫 해, 이 음식을 알게 되었다. 처음 돼지국밥을 먹던 날, 난 비실비실 기운이 없었다. 맛있게 한 그릇을 싹 비우고 식당을 나왔는데, 몸이 회복되는 느낌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기운이 났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음식은 질리지도 않는다.     


90년대 초 이사한 부산에서 새로 발령받은 근무지는 부산서여자고등학교였다. 때때로 보충수업까지 마치고 나면 몸이 파김치가 되는 날이 있었다. 그러면 학교 부근 단골 식당에 가서 돼지국밥을 먹었다. 이 식당 입구에는 커다란 육수 솥이 있었는데, 돼지 뼈에서 우러난 뽀얀 국물이 항상 끓고 있었다. 타향살이의 허전함이 이 국물로 채워지는 듯했었다.    


돼지국밥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왠지 허접한 음식일 것 같다. 기름이 둥둥 떠 있을 것 같고, 지저분하게 온갖 재료가 섞어 있을 같은 느낌.... 돼지국밥의 육수를 끓일 때는 기름기가 있는 고기 부위를 써야 맛이 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부산 돼지국밥의 국그릇엔 기름기가 거의 없고, 깔끔한 국물과 함께 살코기가 섞여 나온다.     


돼지국밥은 서울에서 먹던 순대국밥보다 깔끔하고 시원했다. 그 당시 부산에서 인기 있던 식당은 국제시장 안에 있던 신창동 돼지국밥집이었다. 다른 곳과 달리 그 국밥에는 살코기와 순대가 함께 들어있었다. 순대 잡내도 없었고, 국물에 기름기도 적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그땐 항상 사람들로 붐볐던 기억이 난다.    


경남 통영에 살 때도 그곳 돼지국밥 식당을 여러 군데 다녀보았다. 통영 돼지국밥엔 대부분 기름기가 많은 고기가 들어있었다. 먹긴 먹으면서도 부산 돼지국밥이 그리웠다. 그러다 입맛에 맞는 식당을 찾았다. 통영 시외버스터미널 부근에 위치한 인상 좋은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이다. 이 곳에서 돼지국밥을 주문할 때는 “살코기 돼지국밥이요.”라고 꼭 말한다.     


돼지국밥을 주문하면 삶은 소면이 함께 나오는 곳이 많다. 이것을 국물에 넣어 먹고 나서 밥을 말아먹는다. 반찬으로는 김치, 깍두기, 생양파와 고추가 기본이다. 돼지국밥에는 부추를 듬뿍 넣고 다대기 양념을 넣는다. 나는 여기에 산초가루도 넣는다. 약간의 매운맛과 특유의 향이 돼지국밥과 잘 어울린다.    


돼지국밥에 방아잎을 넣어 먹기도 하지만, 그 특유의 향 때문에 꺼리는 사람들도 있다. 경상도 지역 시골 부엌의 뒷문 주변에서 방아가 자라고 있는 걸 여러 번 보았다. 음식을 만들 때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심어놓은 것 같았다. 나는 이 향신채로 전을 부쳐 먹는다. 미나리 전과 약간 비슷하지만, 그보다는 향이 강하고 맛도 진하다.     


요즘 살고 있는 부천 집 부근에서 깔끔한 돼지국밥집을 알게 되었다. 부산 현지만큼은 아니어도 그 맛이 만족스러웠다. 손님도 적당히 있었는데, 얼마 전 폐업을 했다. 어찌나 아쉽던지. 오랜만에 돼지국밥도 먹을 겸, 당일치기라도 부산 여행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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