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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나 Nov 11. 2020

요술 손

내 손이 쓰~윽 지나가면 설거지 통, 지저분한 그릇들이 깔끔한 모습으로 건조대 위에 냉큼 올라가 앉아있다

내 손이 쓰~윽 지나가면 먼지 낀 거실장이 반짝반짝 윤을 내며 방긋 웃는다

내 손이 쓰~윽 지나가면 세탁기 속 빨래들이 양지바른 베란다에서 뽀얀 얼굴로 열병식을 한다

내 손이 쓰~윽 지나가면 냉장고 속 흩어져 있던 재료들이 맛난 향의 예쁜 옷을 입고 접시 위에 앉아있다

내 손이 쓰~윽 지나가면 울 아들 어릴 적 배앓이가 배꼽에서 나와 스르르 빠져나간다     


지문이 잘 보이지 않아 동사무소에서, 공항 출국장에서 좀 곤란을 겪어도

손마디가 굵어져 전에 끼던 반지가 맞지 않아도

언제였던가.... 날 좋아했던 어린 청년이 만져보고 싶어 했던

귀엽고 대견한 내 손

내 손은 요술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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