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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나 Nov 23. 2020

아이 입맛, 어른 입맛

엄마가 다락에서 홍두깨를 꺼내오는 날은 칼국수를 먹는 날이었다. 나만 빼고 식구들은 모두 칼국수를 좋아했다. 홍두깨를 보면 내 뱃속에서는 먼저 허기가 느껴졌다. 식구들이 칼국수를 맛있게 먹을 동안, 난 밥에 간단한 반찬과 소외감이 더해진 식사를 했다. 칼국수뿐만 아니라 잔치국수, 수제비 같은 밀가루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다.


고1 때, 교련 과목이 있었다. 수시로 응급처치를 연습했고 검열도 받았다. 선배들이 훈련 중 들것에 탈 환자를 찾기 위해 교실로 들어왔다. “너희 중에 체중 40kg 이하인 사람?” 내가 딱 40kg이었다. 편식이 만든 우리 반 최저 체중. 난 훈련 때마다 선배들이 들고뛰는 군용 들것 위에 누워있었다.


학교 앞 분식집 떡볶이는 밀떡을 사용했다. 그런데 떡볶이의 밀가루 냄새는 고소하기만 했다. 그러더니 언제부턴가 밥보다 국수가 맛있게 되었다. 어떤 날은 도시락을 먹고도 매점으로 가서 국수와 만두를 사 먹었다. 고2 체격검사 시간이었다. 체중 검사를 담당하던 분은 고1 때 담임, 김정분 선생님. "50kg?" 놀란 선생님의 눈길이 내 발 끝에서부터 쭉 위로 올라와 내 눈과 마주쳤다. “오호~”


다양한 음식을 먹으면서 체중은 늘었지만, 어릴 적부터 먹지 않던 것들이 꽤 있었다. 청국장을 비롯해서 물컹한 야채로 만든 반찬은 정말 손도 대기 싫었다. 식구들이 좋아하던 가지무침, 가지 냉국 역시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잘 먹고 있는 동생에게 

“가지가 맛있니?” 

“넌 좀 이상하다.”


지금은 나도 가지를 잘 먹는데.... ‘내가 참 자기중심적이었구나.’ 너그럽지 못함을 반성한다. 그리고 하루에 도시락 다섯 개를 매일 쌌던 어머니한테도 미안하다. 반찬통에 시금치나물을 넣어주면, 난 한 점도 먹지 않았다. 좀 얄미웠겠다. 요즘 내가 만드는 김밥에는 오이 말고 꼭 시금치가 들어간다. 그것도 듬뿍. 특히 겨울철 추위를 견디기 위해 당도가 높아진 겨울초의 맛은 최고다.


피하기만 했던 청국장찌개도 그 고소한 맛을 나이 40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 청국장찌개 속 두부를 건져먹으면 건강식을 먹고 있다는 뿌듯함이 느껴진다. 밥에 들어간 콩은 싫어하면서, 콩의 낱알이 오돌오돌 씹히는 청국장 속 콩의 식감은 좋아하니, 이것도 좀 유별난 듯하다.


어떤 이는 아이 때 입맛과 어른 입맛이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내 경우는 그때그때 입맛의 차이가 컸다. 커가면서 칼국수는 물론 다양한 밀가루 음식을 즐겨 먹고, 나물도 자주 먹고 있다. 어릴 때는 입에 대지도 않던 호박, 가지를 자주 상에 올린다. 어쩌면 나이가 들면서 몸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을 몸이 자연스럽게 끌어당기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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