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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나 Nov 28. 2020

통영 살이 4년

망일길에서 바라본 한산대첩이 벌어졌던 바다

남편 직장을 따라 2019년 3월까지 경남 통영에서 4년을 살았다. 바다를 메워 조성된 작은 신도시급 광도면 죽림 아파트 단지에 우리 집이 있었다. 급하게 구하느라 아주 만족스러운 아파트는 아니었지만, 큰 불편 없이 살았다. 시외버스터미널, 이마트, 하나로마트, 은행, 농협, 다양한 종류의 식당, 카페 등 다양한 편의 시설이 잘 갖춰진 곳이다.    


내 집 정원처럼 아늑하게 잘 가꿔진 내죽도 공원은 쾌적한 산책코스였다. 공원 벤치에 앉아 내려다보면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가 보이고, 봄이면 벚꽃이, 6월이면 수국이 공원 한 가득 화려하게 피는 곳이다. 그리고 겨울엔 분홍색, 빨간색 동백꽃으로 단장하여 나에게 예쁜 야외 카페가 되어 주었다.   

  

나의 두 번째 산책코스는 죽림 해안길이다. 비 올 때는 우산을 쓰고, 겨울에는 추위 대비 중무장을 하고, 거의 매일 해안 길을 걸었다. 더운 여름에는 오후 8시가 넘어 산책을 나간다. 그러면 바다 바람 덕분에 더운 줄 모르고 걸을 수 있었다. 바다 건너편 장문 마을 산 위로 보름달이 뜰 때, 잔잔한 바다 위에 비친 화려한 달빛과 떠오르는 달과 함께 걷는 그 묘한 아름다움은 뭐라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그다음 산책코스는 이순신 공원이다. 한산대첩이 벌어졌던 바다가 보이는 공원만으로도 좋은데, 그 양쪽으로 펼치진 길은 특별한 산책길이다. 우선 공원을 중심으로 서쪽 길은 망일봉 중턱이 평탄하게 이어져 있는데, 그 이름도 망일길이다. 통영 친구들도 잘 모르던 이 길은 청마문학관과 통영 기상대로 연결되는데, 바다가 보이고 건강을 가져다줄 것 같은 멋진 나무들이 즐비하다. 동쪽 길은 산과 바다가 접해 있는 산길이다. 해안 절경이 펼쳐지는 이 길을 따라 걸어가면 통영RCE세자트라숲이 나온다. 양쪽 길 모두 나에겐 힐링 장소이다.    


통영으로 이사한 후 탁구를 치다가 만난 조영혜 샘, 그의 친구 김연옥 샘, 유혜정 샘은 나와 단짝 친구가 되어 낮 시간의 일과를 함께 하는 4총사가 되었다. 우리의 공통점은 중·고등학교에서 근무하다 명예퇴직한 여교사라는 공통점 밖에 없었는데, 무슨 찰떡궁합인지 일마다 함께 고민하고 기뻐하는 친구가 되었다.     


해마다 봄이면 조영혜 샘이 주동하는 쑥 뜯기 놀이가 시작되었다. 원문생활공원에서 시작하여 그 뒷산에 있는 쑥을 여러 차례 채집했다. 엄청난 양의 쑥은 여러 종류의 쑥떡으로 우리에게 먹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평생 처음 내 손으로 캔 쑥이 음식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되니, 지나다니다 만나는 갖가지 잡초를 보면서 ‘이 풀은 먹을 수 있는 걸까’ 관심이 생겼다.  

  

2015년에는 통영박물관대학과 2016년 도시농부학교를 수료하고 요가, 라인댄스, 통영문화원 문화강좌, 가곡교실, 우쿨렐레, 하모니카 배우기 등 다양한 취미 생활을 하였다. 합창단원으로 통영국제음악당 무대에 서 보고, 요양시설에서는 재능기부 공연도 했었다. 개인적으로 YMCA 행사에 초대되어 특송을 부르고, 어떤 행사에서는 사례비를 받기도 하였다. 재능에 대한 이런 작은 사례가 아마추어인 내게 자신감을 조금 더해 준 것 같다.  

   

통영문화원에서 함께 노래하던 70세가 넘은 언니가 말했다.

“오래전에 우리나라에 비싼 밍크코트 2벌이 들어왔어.”

“그중 하나를 통영 사람이 샀잖아.”

“그 옛날 통영엔 돈이 흔했어.”

그래서 문학,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예술이 발달할 수 있었나?    


여름 방학을 이용해 대학 동창 13명이, 우리가 1981년 대학 정기답사 때 왔었던 통영에 모였다. 마치 내가 통영 관광전문가가 된 듯, 많은 걸 보여주고 알려주고 싶었다. 2박 3일 동안 더운 날씨에 일정을 무리하게 진행해서 지금도 미안한 맘이 남아있지만. ‘서울에서 먼 길을 왔는데....’ 이런 생각에 욕심을 조절하지 못했던 것 같다.    

 

여행 마지막 코스로 친구들에게 내가 이용하는 시립충무도서관을 보여주었다. 바다가 보이는 자리에 앉아 평소에 내가 느끼는 평화로움을 나누고 싶었다. 도서관에 머무는 한 시간 동안 친구들은 통영 하면 떠오르는 박경리, 김춘수, 유치환, 이영도, 김상옥 이런 분들의 작품을 찾았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 때문에 통영을 3차례나 방문했던 백석의 시를 읽으며 여행을 마무리하였다.   

 

통영살이를 마무리하고 떠나올 때 눈물을 흘렸다. 물론 다시 놀러 올 수도 있겠지만, 일상을 함께 하던 친구들과, 통영이라는 특별한 도시와 이별하는 게 슬펐다. 통영에 잠시 사는 동안 이 도시의 역사, 예술, 자연환경에 대해 각별한 애정이 생겼다. 정말 사랑스러운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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