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되어도 갈 곳이 없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발걸음을 디딜 장소가 없다는 물리적인 부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 마음이 기댈 곳을 잃었다는 것과 같다.
기쁜 일이 있어도, 슬픈 일이 있어도 전할 대상이 없다는 것. 그 막막함이 명절이라는 긴 시간 동안 더 절절하게 나를 감싼다.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고, 이어서 아버지가 떠났다. 그 후 2년이 지나 어머니도 내 곁을 떠나셨다. 그리고 다시 10년 후, 나는 또 한 번 어머니를 잃었고, 상실감을 겪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부모님은 내 삶의 근간이자 든든한 지지대였다. 언제나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쁨을 나누어주고, 슬픔을 함께해 주며, 무엇보다 삶의 지혜를 아낌없이 건네주셨다.
하지만 그분들이 모두 떠난 후, 나는 정신적으로 붕괴되었다. 삶의 중심이 사라진 것 같았다. 이제 누구에게 내 이야기를 자랑할 것인가? 누구에게 슬픔을 나눌 것인가?
특히 명절에 갈 곳이 없다는 것은 곧 내가 천애의 고아가 되었다는 의미 였다. 60세가 넘은 나이에 고아 라니. 얼핏 농담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겐 너무도 현실적인 이야기다.
어쩌면 진정한 고아란 나이와 상관없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내가 결정해야 할 일이 닥쳤을 때, 그 무게를 나누고 의지할 부모님이 없다는 사실이 혼자로서의 실체를 선명히 느끼게 한다.
2025년 설명절은 열흘이나 되는 긴 연휴다. 그 시간의 길이만큼이나 외로움도 길고 깊다. 명절 동안 부모님과 함께했던 기억들이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지만, 그 모든 것이 과거라는 사실이 나를 무겁게 짓누른다.
부모님과 마주 앉아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고, 흉볼 데 없는 남편의 작은 실수마저 웃음거리로 만들고, 남편과 아이들이 잘해 준 일들을 자랑하던 그 평범한 순간들이 이제는 모두 불가능하다. 이제는 자랑할 수도, 흉볼 수도 없다.
어머니가 떠난 후, 나는 동생의 결혼식을 치렀다. 집안의 큰일을 치르려니 부모님 생각이 간절했다. 결혼식 날, 내가 부모님의 자리를 대신했지만, 부모님께 알리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도 슬펐다.
결혼식 당일, 사돈댁을 처음 마주한 순간 눈물이 터졌다. 그분이 순간적으로 어머니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동생의 장모님에게 "동생에게 어머니가 생겨 너무 좋다"며 사돈댁께 잘 부탁드린다고 거듭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어머니가 계셨다면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 생각해 보았다.
여행 중에는 어머니 또래의 어르신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분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피며 어머니를 떠올리곤 했다. 가장 부러운 사람 역시 부모와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볼 때면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얼어붙는다.
왜 부모님과 여행 한번 다녀오지 못했을까? 왜 늘 '나중에, 나중에'를 외치며 미루었을까.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부모님이 떠난 뒤로 나는 늘 머물 곳이 없었다. 몸 둘 곳을 찾지 못해 밤새 뒤척이다 잠이 들면, 꿈속에서도 어머니를 찾아 헤맸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어떤 꿈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눈을 뜨면 나는 여전히 혼자였고, 그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는 현실이 되어 더 큰 그리움으로 나를 삼켰다.
그런 날들은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어머니를 불러보며 보냈다. 그리움은 내 머릿속에서 계속 소용돌이치거나 끓어올랐다.
특히 명절을 앞두고는 그 소용돌이가 더 커졌다. 어머니의 빈자리는 단순한 부재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존재 일부가 함께 사라지는 듯한 공허함을 느끼게 했다.
점점 흐릿해져 가는 어머니의 목소리와 다정했던 눈빛을 기억하려 애쓰면서도, 점차 희미해지는 그 기억들이 나를 더욱 초조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결심했다. 사라져 가는 기억들을 기록으로 남기겠다고.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추억을 글로 남기며 어머니와의 대화를 이어 가야겠다고.
명절의 빈자리는 슬픔이지만, 동시에 사랑의 증거다. 나는 그 사랑을 품고, 부모님과 함께했던 시간들을 가슴속에 새기며, 다시 또 한 걸음 나아간다.
부모님의 빈자리라는 비워진 공간에 부모님이 내게 남겨주신 사랑과 가르침으로 메우면서 내 삶의 또 다른 지지대로 삼으려 한다.
그것을 나 또한 누군가에게 건네려 한다. 부모님이 그러하셨듯, 나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자리와 온기를 내어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부모님을 기리는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