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 내내 집 안을 가득 채웠던 전 냄새가 이제는 조금씩 옅어져 창밖으로 흩어진다. 그 사이 아이들은 이른 아침부터 돌아갈 준비를 한다. 현관 앞에 가지런히 놓인 가방을 바라보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진다.
며칠 전부터 장을 보며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허리를 펴지 못한 채 부쳐낸 오색빛깔의 전. 살이 통통하게 오른 조기, 여러 차례 핏물을 빼고 정성스레 양념을 발라 만든 갈비찜. 손끝이 저려오고 어깨가 쑤셔도 괜찮았다. 이 음식들이 자식들의 냉장고 한 칸에서 바쁜 어느 밤 따뜻한 위로 한 끼가 되어주길 바랐으니까.
“엄마, 이런 거 가져가면 다 버리게 돼. 요즘은 집에서 밥 잘 안 해 먹어. 그냥 과일 몇 개만 가져갈게.”
각자의 집으로 떠날 준비를 마친 아이들은 정성껏 싸둔 보따리를 단호하게 밀어낸다. 기름 냄새 밸까 봐 비닐을 몇 겹이나 덧씌웠던 마음이 허공에 멈춘다. 내민 손은 갈 곳을 잃고, 결국 천천히 거둬진다. 마지못해 과일 몇 알을 챙기는 모습을 보며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는다.
‘그래, 요즘 애들 입맛이 우리랑 같을 리 없지. 집에서 밥 해 먹을 시간도 없을 테고….’
머리로는 수백 번 이해한다. 번거로운 것을 싫어하고,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세대라는 걸 안다. 하지만 아이들이 떠난 뒤 텅 빈 거실 한가운데 남겨진 음식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애써 눌러두었던 서운함이 조용히 고개를 든다.
내가 싸주고 싶었던 건 기름진 전 몇 장이 아니었다. 바쁜 하루 끝에 편히 앉아 따뜻한 밥 한 끼를 먹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달라진 세월과 달라진 입맛을 인정해야 한다는 서글픈 자각이 밀려온다. 이제 내 사랑도 그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더 가볍고 부담 없는 모습으로 바뀌어야 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남겨진 고기와 생선을 다시 냉장고 깊숙이 넣으면서도 내 손길이 자꾸만 느려진다.
" 엄마, 그거 좀 싸줘' 하고 다시 문을 열고 들어 올 것만 같은 헛된 기대 때문일까.
아이들이 거절한 것이 음식이 아니라, 내 마음일까 봐 괜히 코끝이 시큰해진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아직도 집 안을 맴돌고, 그 냄새는 사라지지 못한 내 사랑처럼 오래 남는다.
봄이 오는 길목, 창밖에는 설악산의 잔설이 희게 빛난다. 녹지 못한 눈처럼, 전하지 못한 보따리의 무게가 오늘따라 더 크게 느껴진다. 다음 명절에는 아이들 말처럼 다시 장을 보고 전을 부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