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의 이별

by 속초순보기


2012년 12월 22일 오후 1시 20분.

한 달이라는 시간, 병원이라는 공간 안에서 쌓아 올린 간절한 기도와 불안의 성벽은 단 한순간에 허무한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생과 사를 가르는 판결은 가혹하리만큼 짧았고, 의사의 입술 끝에서 떨어진 차가운 선언은 날카로운 얼음 파편이 되어 심장에 박혔다.


' 엄마... 동생들 걱정하지 마, 내가 잘 챙길게..'





장례를 치르고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었다. 냉기가 가득한 집안, 무엇부터 해야 할까.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장작불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불길은 살아 있는 것처럼 흔들리며 활력을 뽐내고 있었다. 일렁이는 불빛을 멍하니 바라보며 그림자처럼 앉아 있기를 수시간, 그러나 손목 위의 시계는 겨우 20분이 지나 있었다.


방 안으로 들어와 어머니가 늘 앉아 계시던 아랫목에 그대로 주저 않았다. 손때 묻은 벽지와 누렇게 눌어붙은 익숙한 장판의 무늬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렇게 누워 한숨 자고 일어나면 온몸이 개운해.”


등을 타고 올라오는 뭉근한 온기 사이로 어머니의 낮은 음성이 환청처럼 들려왔다. 온기는 이토록 생생하게 살아 나를 따뜻하게 감싸는데, 그 말을 건네던 주인공은 이제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 살을 에듯 시렸다.

이윽고 나를 지탱하던 가장 든든하던 축이 무너졌다는 사실이 해일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참아왔던 둑이 무너지듯 고여 있던 슬픔이 툭, 툭 하고 장판 위로 떨어졌다. 견딜 수 없는 슬픔을 어린 동생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마당으로 나갔다.


밤하늘에는 맑고 차가운 달이 홀로 밝게 떠 있었다. 별빛을 모두 흡수한 것처럼, 달 하나만이 유난히 선명했다. 달빛은 어머니의 장독대 위에도 고요히 내려앉아 있었다. 크고 작은 옹기 안에는 여덟 남매를 키워낸 맵고 짠 세월의 맛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고, 주인을 잃은 장독들은 슬픔의 기색도 없이 투명하게 빛났다. 나는 장독대 앞에 주저앉아 오열을 쏟아 냈다.


그때 부엌문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동생들이 하나둘 마당으로 나와 내 곁에 서기 시작했고 동생들의 그림자가 내 그림자 곁으로 길게 늘어졌다. 늘 쾌활하던 동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엄마…”


부르기만 해도 가슴이 저미는 두 글자,

끝내 문장으로 완성하지 못한 채 동생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졌다. 눈물로 얼룩진 막냇동생의 얼굴을 신호탄 삼아 마당에 모여 있던 여덟 남매의 눈에서는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우린 누구의 그리움이 더 깊고 아린지 잴 수조차 없는 적막 속에서 달빛만을 응시했다.


점점 엉해지는 정신을 수습하고 마주한 부엌 아궁이 속에서는, 여전히 장작불이 타닥타닥 명랑한 소란을 피우며 타오르고 있었다. 그 소란스러운 불꽃의 몸짓은 흡사 왁자지껄 모여 살던 우리 여덟 남매의 생기 어린 모습과 닮아 있었다.


어둠 속에서 홀로 빛을 내뿜는 그 불길은 마치 어머니가 남겨진 우리에게 보내는 마지막 신호처럼 다가왔다.

서로의 몸을 포개어 불길을 키우는 장작들처럼, 고통 속에서도 서로의 어깨를 기대어 온기를 나누라는 어머니의 간절한 당부 같았다.


나는 흐느끼는 동생의 여윈 어깨를 감싸 안으며, 쏟아지는 눈물 너머로 달빛을 받은 장독대를 보았다. 오늘이 지나면 저 장독들처럼 어떤 추위에도 깨지지 않는 단단함으로 , 함께 뭉쳐 활활 타오르라는 불꽃의 의미를 기억하며 살아가리라.


비바람을 견디며 속을 익혀 여덟 남매의 삶을 지켜냈던 어머니를 대신해 이제는 내가 동생들의 울타리가 되어주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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