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며

남편의 군입대 후

by 속초순보기

어머니와 처음 면회를 왔던 그 여관에 자리를 잡고 , 나는 공중전화 박스로 향했다. 남편은 죽어도 아이는 봐줄 수 없다고 하여 하는 수 없이, 서울에 있는 동생에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동생은 양구까지 가는 직통 버스가 없어서 서울서 내려오는 데로, 신남에서 자고, 아침 일찍 양구로 들어와 아이를 봐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시험을 치러 가라고 했다.


이른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이와 함께 곤히 자고 있는 남편 머리맡에 쪽지를 남기고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그 시간 양구 터미널은 안개가 잔뜩 끼어 사람을 분간 할 수 도 없었다. 안개 낀 터미널에는 사람도 차도 없었다. 시험장인 춘천으로 가는 길이 마치 안갯속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무슨 방법이 있지 않을까... 그렇지... 양양에서 출발하여 한계령을 넘어와 신남을 경유하여 춘천으로 가는 버스가 있었지..


수중에 돈이 없으니 춘천까지 택시를 탈 수도 없었고, 일단 큰길로 뛰어나와 신남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계속 뒤를 향해 보았다. 지나가는 차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새벽이라 지나가는 차도 없었다. 서서히 안개가 걷히면서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자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차가 한대라도 지나가길 간절히 바라며 신남 방향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주변에 건물이 없고, 너른 들판만 보이는 걸 보니 양구 읍내를 벗어 난 듯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길가에 털석 주저앉아, 뛰어 왔던 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멀리서 봉고차 한대가 달려오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손을 들어 차를 세우고,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았다며 울상을 지으며 신남까지만 태워 달라고 부탁을 했다. 봉고차를 운전하시는 아저씨는 큰 일을 겪게 되었다며, 마침 신남까지 간다며 얼른 타라고 했다. 얼핏 보니 차에는 아저씨 혼자 인 듯했다. 고등학교 다닐때 10리나 되는 길을 걸어서 학교를 다녔다. 아침에는 혼자 걸어도 그다지 무섭지 않았지만, 저녁에는 무서웠다. 길을 걷다보면 지나가는 차가 태워준다고 서기도 하였지만, 어머니는 절대 타서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늘 마중을 나오셨다. 여자 혼자 낯선차에 절대 타면 안된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나면서 차에 타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는 심정으로 운전석 옆자리에 올라탔다.


차가 출발하자, 어머니가 아프다니 걱정이 되겠다며 뒤편에 말을 걸어왔다. 차에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한 분 더 계셨다. 어르신의 말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긴장이 풀리면서, 안심이 되었다. 운전자의 어머님인 듯했다. 아프지도 않은 어머니를 걱정해주시는 어르신을 보자, 어머니 생각도 나고,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신남에 도착하자 어르신은 어머님 잘 보고 오라는 위로의 말씀까지 해 주셨다.


다행히 양양에서 넘어오는 버스를 신남에서 바로 탈 수 있었다. 어떻게 버스를 타고 춘천까지 도착했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춘천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는 택시를 타고 시험장인 oo고등학교로 향했다. 학교 정문에 도착해보니 이미 문이 잠겨 있었다. 반드시 9시까지 고사장에 입실하라고 주의사항이 적혀있었는데 10분이나 더 지났으니 문이 닫힌 것도 당연했다.


시부모님에게는 읍내 다녀온다고 하고 집을 나왔고, 남편한테는 시험을 반드시 봐야 한다고 이야기 했고, 일을 하고 있는 동생을 일부러 내려오게 만들었는데, 시험을 보지도 못하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 어쩐다... 그래 어쩔 수 없지. 담을 타 넘자....


두리번 두리번 살피자 지나가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정문 옆으로 난 담을 타 넘었다. 담을 타 넘어 뛰어내리다 굴러 넘어졌다. 흙투성이가 된 옷을 터는 둥 마는 둥 하며, 고사장을 찾아 들어갔다. 고사장인 교실에는 이미 사람들이 꽉 차 있었고,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내가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가자, 뽀글뽀글한 머리는 정리가 안되어 얼굴 전체를 가려 눈만 보이지, 옷은 흙 투성이지.. 의아한 표정으로 수험생들과 감독관이 일시에 쳐다보았다. 시험에 조금 늦었다며 쭈삣거리며, 목례를 한 뒤 비어있는 자리가 눈에 띄길래 그 자리에 가서 앉았다.


이미 다른 사람들은 답지 작성요령을 숙지하고, 시험지 배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킹하는 시험은 처음이었으므로, 작성요령을 뒷사람에게 물어보려고 몸을 돌렸다. 나는 순간 깜짝 놀랐다. 내 뒷사람이 나의 답안지를 작성한 줄 알았다. 뒷사람의 답안지에 적혀 있는 이름 나와 똑 같았기 때문이다. 성과 이름과 성별이 같은 사람이라니... 우연치고는 기가 막힌 우연이었다.


졸업을 하자마자 신랑을 따라 산골로 들어간 이후에는 책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시험을 어떻게 쳤는지도 모르고, 시험이 끝나자마자, 다시 양구로 향했다. 양구행 버스에 오르자 그제야 동생이 도착해서 아이를 잘 돌보고 있는지, 낯을 가리는 아이가 이모와 잘 있는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여관에는 남편 혼자 자고 있었다. 여관 주인이 어떤 젊은여자가 아이를 업고 시장쪽으로 갔다고 알려 주었다.

아이를 찾으로 여관을 나와서 시장쪽으로 향했다. 시장이 반쯤 남은 지점에서 아이에게 옷과 신발을 사 입히고, 돌아오는 동생을 만났고, 신랑은 부대로 나는 서울로 향했다.


며칠 있으면 휴가 나올 남편이 서울로 올라와 산골로 들어가기 위해서 였다. 휴가 나온 남편과 서울에서, 아이를 데리고, 경복궁 구경도 하고, 빌딩숲을 거닐었다. 세상은 모두 나를 빼고도 잘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에 합격하여 산골의 생활을 그만두고 세상 사람 들 속으로 들어 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서울 구경을 끝내고 남편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2년만에 함께 걸어보는 고갯길이었다. 아이를 앞세워 걸리기도 하고, 남편이 목마를 태우기도 하며, 걷는 고갯길은 힘이 들지도 않을 뿐더러 오랜만에 행복함을 느꼈다. 남편의 제대는 아직 1년반이나 더 남아 있었기 때문에, 다시 이길을 우리가족 3명이 함께 걷는 다는것은 먼 훗날의 일이겠지... 생각하니 서글퍼 지기 시작 했다. 나의 서글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잠시 쉬며, 무릎위에 아이를 앉히고, 좋아하는 남편의 얼굴은 행복 그 자체였다..


아무 말도 없이 아이만 들쳐 업고, 집을 나와 5일 만에 집으로 들어서는 나를 보고 어머님이 달려 나오셨다. 어머님이 뭐라고 나를 나무라려고 하는 찰나에 뒤이어 남편이 들어서자, 어머님은 내가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간줄 알았다며, 안도의 숨을 쉬며, 아범 하고 같이 들어왔으니 용서해준다고 하셨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는 그날이 그날인 산골의 생활의 연속이었다. 아이와 나는 마당 앞에서 흐르는 개천에서 물장구를 치기도 하고, 버들치를 잡아 세숫대야에 담아 놓으면 아이는 그 고기를 잡느냐 한참을 혼자서 놀기도 했다. 길가에는 으름이 익어 하얀 속살을 드러 내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밭에서 고추를 따서 말리는데 집중을 하셨다. 아이는 널어놓은 붉은 고추를 한입 베어 먹고, 혓바닥을 쓸어내리며 울기도 하고, 마당에 가끔 나타나는 뱀을 보고 소스라 치게 놀라는 일도 있었다. 뱀은 마당에 자주 출몰하여, 아버님은 뱀을 잡을 수 있는 집게를 마련해 두고, 나타날 때마다, 집게로 집어, 대추나무 밑에 마련해 둔 항아리에 넣어 두었다. 항아리에는 늘 뱀들이 항상 차 있었고, 가끔 트럭을 타고 물건을 팔러 오는 장사꾼들에게 넘겼다. 뱀을 판 돈으로는 수세미나 퐁퐁 등 설거지 용품들과 교환하여 생필품을 마련했다.


나는 매일 시험 합격일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마루끝에 앉아 멍하니 마당만 쳐다보는일이 잦아 졌다. 합격자 발표는 서울신문에 한다고 했다. 서울 신문은 반장 집에 매일 배달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발표일 윗동네로 올라가는 우체부 아저씨의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아이를 마루에 앉혀 놓고,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반장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신문이 하얀 띠지에 말린 채 마루 한가운데 던져져 있었다. 반장님 댁에는 아무 기척이 없었다. 마루로 다가가 늘 해 왔던 행동처럼 자연스럽게 신문을 끌어당겨 펼쳤다.


이 산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취직을 해서 나가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신문 한장 한장 넘기면서 가슴은 요동을 치기 시작 했다.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합격자 명단을 찾기 시작 했다. 신문을 3장을 넘기자 신문 한면 가득 합격자 명단이 인쇄되어 있었다.


위에서부터 하나 하나 이름을 짚어 나가기 시작했다. 시험을 보기 위해 공부를 한적도 없으면서 왜 합격자 명단에 이름이 실려 있기를 기다리는 것일까...참 마음은 기대 이상이었다. 공부를 한적도 없으면서 합격을 기다리는 마음이라니, 어이없다 생각하면서, 지면 위에서부터 천천히 다시 훑어 나가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가 살고 있는 oo군에 눈길이 머물렀다. 가슴이 조금 전 보다 더 뛰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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