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상황이 지속되는 관계로 그동안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님을 뵈러 가질 못했다. 어머님은 3년 전부터 요양원에 계신다. 침대에서 떨어진 이후 거동이 불편하여 병원에 계시다 요양원으로 옮기셨다. 올해 연세는 93세이시다. 내가 처음 어머님을 만난 것은 어머님 나이 56세였다.
처음 만난 어머님은 이미 머리는 하얀 백발이셨다. 남편 형제들 중 한 분을 낳고 약을 잘못 먹어 바로 30대에 하얗게 세어 버렸다고 했다. 어머니의 하얀 머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오늘 면회가 된다는 연락을 받고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섰다. 당일치기를 해야 하기도 했지만 남편이 오후 2시로 사전 면회신청을 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부터 마음은 자꾸 어머니한테로 가 있었다.
집을 나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내 맘처럼 하늘은 미세 먼지로 뿌앴다. 자동차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기온만큼은 봄이었다.
길을 나서면서 처음으로 어머니를 만나러 가던 날이 생각났다. 남편과 나는 학교에서 만났다. 학교에서 만난 우리는 매일매일 만났다. 만남이 일상이 되었고, 캠퍼스에서도 늘 함께였다. 떨어지기 싫어서 남편은 방학을 해도 한 일주일 정도 더 있다 집으로 돌아갔다.
겨울방학을 끝으로 졸업이었다. 졸업과 동시에 우린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야 했다. 취직을 하든 무엇을 하든 자기 할 일을 찾아가야만 했다. 아버지는 안정적인 직업으로는 공무원이 최고라며 공무원이 되길 바라셨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결혼이나 하라며 선자리를 마련하시곤 했다.
선이 들어올 때마다 겁이 났다. 생판 모르는 남자와 결혼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더욱이 나한테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어느 시에 선자리가 마련되었다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나는 그대로 일어나 남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집을 나온 나는 남편이 가르쳐준 동네 이장님 댁에 전화를 걸어 내가 간다는 사실과 버스 터미널로 마중을 나와 달라고 했다.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도착한 버스 터미널에는 남편이 없었다. 남편이 나오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이 궁리저 궁리를 하고 있는데 남편이 나타났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남편의 집은 두메산골이었다. 아무리 걸어도 집 한 채 나오지 않는 그런 산골이었다. 남편의 뒤를 따라 걸으면 언제 도착하느냐고 수십 번을 물어본 것 같다. 남편은 줄곧 앵무새처럼 다 왔다는 똑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남편이 앞서 걷고 있긴 했지만 산골길은 무서웠다. 한참을 걸어야 불이 켜진 집 한 채를 볼 수 있었다. 시내버스에서 내려 걷기 시작한 지 한 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무서워 발걸음을 빨리 옮겨놓으며 남편 뒤를 바싹 따라붙었다.
드디어 한 무리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남편하고 사전 연락도 없이 방문하는 것이라 시부모님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두고 걱정하며 줄곳 뒤 따라왔는데, 무서운 산골길을 데, 산골길을 걷는데 정신이 팔려 시부모님 만날 생각은 어디론가 달아나 버렸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가구들 사이에서 불빛이 문틈으로 겨우 삐져나오는 집들을 지나쳐 한참을 걸어 올라가서야 남편의 집이었다. 남편이 다 왔다는 말 한마디에 어두운 산골길을 걸으며 긴장했던 몸이 풀리는 것 같았다. 남편의 집 앞에는 작은 개울이 있었다. 어둠 속에서 징검다리를 찾아 한발 한발 옮기자 그제야 내가 앞으로 시어른이 될 분들을 만나러 왔다는 걸 깨달았다.
느슨해졌던 몸과 마음이 다시 긴장상태로 돌입했다. 남편과 내가 마당에 들어서자 시부모님과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시누이가 마루로 나왔다. 시어머니는 마루에서 급히 내려오시더니 춥고 어두운데 오느라 고생했다며 어서 들어오라고 하셨다.
어머님 말씀대로 마루 밑에 신발을 벗어 놓고 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은 5명 정도 앉으면 꽉 찰 정도로 작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눈치를 보며 앉아 있는데, 어머님은 장아찌와 김치를 얹은 작은 둥글고 스텐으로 된 밥상을 들고 들어오셨다. 아마도 남편에게 내가 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듯했다.
밥을 다 먹자 어머님은 사랑방에 불을 넣어놨다며,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며 사랑방으로 안내를 하셨다. 학교를 졸업하기 전이라 혼이 날 줄 알았는데, 반갑게 맞아 주어 괜한 고민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방은 따뜻했다. 솜이불이 두껍고 무거운 것 빼고는 별 탈 없이 시댁에서 첫날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밥을 준비하는 어머님에게 나가봐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밤에 잘 때 춥지 않았느냐며 문밖에서 여쭈어 보셨다. 그 말씀에 나는 얼른 일어나 부엌으로 나갔다. 아침밥은 이미 다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사랑방에서 일어나길 기다리고 계신 듯했다. 차려 주는 아침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마당을 나섰다.
그때 어머님은 어젯밤 내가 마당으로 들어설 때, 남편이랑 닮아서 마치 오누인 줄 알았다는 말씀을 하셨다. 남녀가 서로 닮으면 잘 산다는 말까지 덧붙이셨다. 그 말에 어머님이 나를 받아들여 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의 여자 친구를 처음 보고 오누이 같다며 좋아해 주시던 어머님은 그 이후 남편이 군대를 간 3년 동안 내게 큰 의지가 되어 주셨다. 결혼생활 내내 어머님은 내게 둘은 싸워도 금세 하하 호호한다며 걱정 없다고 말씀해주셨고, 항상 아범보다 나를 믿는다고 하셨다.
22살에 어머님을 처음 만났다. 어른이 되면서 처음 만난 분이 시어머니셨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해 보지도 않고 결혼생활부터 한 나에게 어머님은 세상의 지표가 되어 주셨다. 어머님의 가르침대로 아이들을 키우려 노력했고, 어머님의 근면성실을 보며 나도 따라 했다. 어릴 때의 친정 성향은 깔고 있었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는 시어머니로부터 배웠다.
어머님은 우리 부부를 알아보시는 것 같았다. 큰소리로 물으면 고개만 끄덕이고 이내 눈을 감아 버리셨다. 코로나 때문에 면회가 되지 않자 가족들을 기다리다 지친 어르신들이 빠른 속도로 나빠지신다고 이야기를 했다.
한숨만 나왔다. 아무 말씀도 못하시고, 먹는 것도 호스를 통해 드시고, 하루 종일 잠만 주무신다. 벌써 일 년이 넘으신 것 같다. 1시간가량을 의자에 앉아 어머님을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다. 아침 집을 떠날 때 좀 좋아지셨으려나 하는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졌다. 집으로 오는 내내 등 뒤에서 “ 너만 믿는다, 너만 믿는다” 하는 어머님의 말씀이 계속 들리는 듯했다. 오늘 밤은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