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사랑

by 속초순보기

방학이 되면 우린 으레 할머니 댁으로 가야 했다. 방학에 할머니 댁으로 가는 것은 아버지의 명령이었다. 방학 동안만이라도 할머니 댁으로 가야 맛있는 이밥(흰쌀밥)을 실컷 먹을 수 있다며, 가기 싫다는 우리를 억지로 보냈다.



그해 겨울방학에도 우린 할머니 댁에서 방학을 보내고 있었다. 낮에는 산으로 들로 사촌들과 어울려 쏘다녔다. 실컷 놀다가 들어와 할머니가 해주신 밥을 먹고 윗방으로 올라가 이야기를 나누다 잠들곤 했다. 우리가 자는 방에는 나무로 얼기설기 엮어서 둥그렇게 만든 통에 고구마가 가득 들어 있었다.


깊은 겨울밤은 한잠을 자고 일어나도 아직도 한밤중이었다. 그러면 우리들은 안방에서 주무시고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깨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통나무에서 고구마를 꺼내 먹었다. 나무통은 너무 높고 깊어서 어린 우리들 손으로는 꺼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얼기설기 엮어진 틈으로 손을 넣어 밑동에서부터 고구마를 꺼내 입으로 껍질을 까고 먹었다.


방학 때가 끝날 즈음이 되면 고구마는 나무통에서 남아나는 것이 없었다. 처음 하나둘씩 없어질 때는 쥐가 먹는 줄 알고 계셨던 할머니도 어느 날 훅 내려간 나무통을 보고 우리의 소행임을 알고 야단을 치셨다.


추운 겨울날이었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이 방 저 방으로 뛰어다니면 놀았고, 저녁도 일찍 먹고 고구마가 있는 윗방으로 올라가 모두 일렬로 누웠다. 어두컴컴한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숫자를 세어가며 잠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부엌문이 삐걱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모두는 귀를 쫑긋 세우며 이후의 동태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를 보는 순간 개학하려면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 벌써 우리를 데리러 왔나.. 하는 생각에 안방으로 내려갔다. 늦게 들어온 아들을 위해 할머니는 부엌으로 나갔다. 아버지는 빨리 자라며 윗방으로 올려 보냈다. 밥상이 차려지고 할머니와 아버지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모자간의 대화가 평화롭게 이어지더니 갑자기 아버지가 윗방에 누워있는 우리를 향해 빨리 옷을 입으라고 소리를 지르셨다. 어리둥절해진 나와 동생들은 어정쩡한 자세로 서있었고, 다시 아버지는 빨리 짐을 싸라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 이 집 안에 장손은 나이고, 아이들 역시 장손주인데, 왜 우리 아이들만 미워하느냐, 어느 집안이 외손주를 더 이뻐하느냐? 외손주는 밤꽁이란 말을 모르느냐”며 할머니에게 항의를 하셨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아버지는 어떻게 알았을까?



5형제의 장남이었던 아버지는 광산에 다니면서 집안의 대소사며, 할머니가 요구하는대로 돈을 가져다주는 것 같았다. 어른들 사이에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아버지는 그랬다. 자식도 많은데 돈을 아껴 할머니에게 가져다 드리면 논을 사들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재산을 불려 나간 아버지 셨기에, 그 토지에서 수확되는 쌀은 당연히 우리가 먹어도 된다고 생각했을까?



늦은 한겨울밤 밥을 먹다 말고 할머니와 싸운 이유가 외손주와 친손주를 더 차별한다는 이야기였다. 사실이 그랬다. 조부모님은 우리를 차별했다. 어린 나이에 말은 못 했지만 말이다. " 밥을 너무 많이 먹는다, 밥주걱에 묻어 있는 밥풀을 떼어먹을 때도 왜 뜯어먹느냐, 지 어미를 닮아서 미운 짓만 한다"며 말씀을 하셨고, 마실에 나갔다 사탕이라도 얻어오셔도 늘 외손주 차지였다.


할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셔도 그 말이 차별이라 느낀 적은 없었다. 단지 나는 사촌들도 다 동생이라 먼저 챙기시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런 사실들을 다 알고 계셨다. 아버지는 “ 우리 아이들이 이담에 더 훌륭한 사람이 될 테니 두고 보라” 는 말씀을 남기고 집을 나섰다. 우리 형제들도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할머니 댁에서 우리 집까지는 어린이 걸음으로는 3시간 이상 걸렸다. 할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노여움보다 추운 칼바람이 부는 한밤중에 어떻게 걸어가야 하나.. 그게 더 걱정이었다.


아버지와 우리 형제 3명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기 시작했다. 겨울밤은 한 치 앞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이럴 때 달이라 더 떠 주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동설한의 추운 칼바람은 소매 속을 파고 들어와 온몸을 휘젓고 나가기를 반복했다. 사람이 다니는 길을 찾아 아버지가 앞장서서 걸었다.


앞에서 아버지가 길잡이 노릇을 해주고 있었지만 우린 길을 벗어나기도 하고, 돌멩이 걸려 넘어지곤 했다. 뒤에서 우리가 뒤처지고 넘어져도 아버지는 아랑곳 않고 묵묵히 걷기만 하셨다.



어느 정도 걷자 주위가 구별이 되면서 길도 보이고 시작했고 주위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앞에서 걷던 아버지가 멈추었다. 열심히 따라가던 우리도 함께 멈추었다. 멈춘 아버지는 “ 지금부터는 너희들이 앞장서서 걸어라” 말씀하시고는 우리를 앞에 서게 하셨다.


우리 형제들은 “ 무섭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불어 춥다”며 앞으로 나서기를 꺼렸다. 그러자 아버지는 “ 너희가 앞에서 걸어야 넘어지면 얼른 일으켜 세워야 한다"며 말씀하셨다.


우린 아버지의 말씀을 믿고 앞에 서서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지기도 하고, 발을 곱디뎌 넘어져 울기도 했지만, 한 번도 일으켜 세워주지 않았다. 모른 채 하며 일어설 때까지 우리 뒤에서 아무 말 없이 서 계시기만 했다. 넘어지고, 길을 벗어나기도 하면서 해안가가 있는 큰 도로로 나왔다.


큰 도로에 서자 들판의 바람보다 더 강력한 바닷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세서 도로의 온 먼지를 다 뒤집어쓸 판이이었다. 바닷가에서도 강한 파도소리가 들렸다. 도로로 나오면 걷기 편해질 줄 알았더니, 강한 바람에 파도소리까지 겹져 더 무서웠고 걷는 것이 힘이 들었다. 강한 바닷바람이 한 번씩 불어오면 우리 모두는 아버지 뒤로 일제히 숨었다.


도로에는 차량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았고, 사위는 캄캄했다. 바닷가 등대에서 비추는 등댓불만이 휘익 휘익하고 한 번씩 비추기를 반복했다.


큰 도로에 나와서부터는 아버지가 앞장서서 걸었다. 그러면서 이따금씩 지나가는 트럭을 유심히 살폈다. 우리들의 걸음은 강하고 추운 겨울바람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걸음으로는 밤을 새워 걸어야 집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서운 바람과 파도소리를 내는 바다는 어머니와 가끔 왔던 바다였다. 이른 아침 어머니를 따라 이곳 바닷가에 와서 파래와 섭을 채취하던 익숙한 바닷가였다. 바다로 반찬거리를 채취하러 올 때는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왔기 때문에 집까지는 도저히 걸어갈 수 없는 거리라는 것을 우리도 알고 있었다.


걷는 속도가 느려지고, 쳐지자 아버지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 오늘 일을 절대 잊지 말아라. 남에게 홀대를 받지 않으려면 너희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한밤중 이렇게 걸어가는 이유를 절대 잊지 말라, 나중에 이 길을 걸을 때는 아마도 아버지 생각이 날 거다 ”라고.


아버지의 말씀은 한겨울 밤 강한 바람에 날려가는 듯, 파도 소리에 묻히는 듯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해변도로를 따라 걷고 또 걸었다. 아버지는 걸으면서 계속 뒤를 살폈다. 얼마 후 도로 끝 부분에서 자동차 불빛이 나타나며 우리를 비추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앞서 가던 걸음을 틀어 도로로 들어가시더니 도로 한 복판에 멈췄다.


그리고는 도로 위에 파를 들어 젓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트럭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는 불빛을 향해 몸을 돌렸고 나는 눈을 감아 버리고 말았다.


다행히 트럭은 아버지 앞에 멈추었다. 아버지는 트럭 운전석 쪽으로 다가가더니 운전기사에게 이야기를 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사정 이야기를 하고 태워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 같았다.


운전기사와의 대화가 끝나자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을 차례 차례 들어 올려 트럭의 뒤 짐 싫은 곳에 우리를 올려놓았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훌떡 뛰어오르자 차가 출발하기 시작했다. 트럭 뒤 짐칸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났다 . 하지만 바람을 피할 수 있어서 아늑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언제 가는 이것도 다 추억이 된다며, 엄마한테는 비밀로 하라고 했다.



우린 트럭을 타고 읍내로 들어와 다시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했다. 집 굴뚝에서는 연기가 나고 있었다. 굴뚝의 연기를 보니 안심이 되었고, 엄마를 부르며 부엌으로 달려갔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아침밥을 준비하시다 우리를 맞이했고 , 어서 빨리 아궁이 앞으로 오랴며 장작불에 몸을 녹이게 하였다.


엄마는 이게 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아버지와 우리는 서로 쳐다보며 미소만 지었다. 아버지는 일단 아이들부터 재우자며 우리를 방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우리 형제들은 단잠에 빠졌다.


그 이후 우리는 방학을 해도 할머니 댁에 가는 일은 없었다. 밥상에 둘러앉아 부족한 밥을 두고 티격태격하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할머니 댁에서 먹는 이밥보다는 훨씬 꿀맛이었다.


아버지


오늘 아버지와 걸었던 그 해변을 걸었습니다. 오늘은 바다에서는 챠르르 챠르르 몽돌구르는 소리가 아름답게 들렸습니다. 그 한겨울 아버지 뒤에 숨어서 들었던 파도소리는 무서웠는데 말이예요. 아버지 말씀처럼 그때 동생들과 걸었던 그 길이 추억이 되었어요. 바닷가로 향한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니,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어요.


지금 바다는 조용하고, 봄바람이 불지만, 아버지와 같이 걸었던 칼바람속의 그때가 몹시 그리운 것은 아버지가 계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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