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와의 한판 승부

by 속초순보기

봄은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계절이다, 농사는 계절의 순기에 맞추어 준비하지 않으면 그 해 농사를 망쳐 버리기 때문에 산등성이에 잔설이 남아 있는 2월부터 농사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시부모님은 봄 농사 준비를 위해 이웃집 경운기를 얻어 타고 읍내 장터로 나가셨다. 장터에서 고추, 옥수수, 배추, 파등 다양한 씨앗을 구입하여 돌아오셨는데, 매해 빠지지 않고 사 가지고 오는 품종이 있었다. 바로 딸기였다.


산골에서 아이가 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는 감자와, 고구마가 전부였다. 그런 아이에게 먹이려고 할아버지는 매해 잊지않고 꼭 딸기 모종을 사 오셨다. 그러면 나는 아버님이 사 온 딸기를 마당 앵두나무 밑에 심었다.


아침밥을 먹고 아이와 나는 딸기가 얼마나 컸는지 궁금하여 달려가곤 했다. 하루하루 커가는 딸기를 바라보며 아이에게 딸기의 성장과정을 이야기해주었다. 아이는 “ 먹는 거? ” 하며 나를 따라 매일매일 딸기 밭으로 향하였다. 하얀 꽃이 피고, 딸기가 열리고, 열매가 맺히더니 점점 알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딸아이도 잠에서 깨어나면 나의 손을 잡아당기며 딸기 밭으로 향했다.


간식이라고는 고구마, 감자가 전부였던 아이에게 새로운 간식인 딸기는 아이에게는 새로움이었고, 부모님과 나에게는 아이에게 무엇이라도 해줄 수 있다는 뿌듯함이었다. 뜨거운 땡볕에 물만 주만 쑥쑥 자라는 마당의 채소처럼 아이도 쑥쑥 성장하고 딸기도 하루가 다르게 씨알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광경을 바라보는 우리 가족은 모두 행복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드디어 빨갛게 딸기가 익었다. 아버님은 하루만 더 있다 따면 될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나와 아이는 딸기 앞에 앉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딸기만 들여다 보아도 행복했다. 드디어 우리 딸이 생애 처음으로 딸기맛을 알게 되는구나... 감격적인 순간이 드디어 내일로 다가온 것이다.


6월 초의 날씨는 이른 아침부터 햇볕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마당 대추나무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울음소리에 아이가 잠에서 깨어났다. 아이는 일어나자마자 나를 이끌기 시작했다. 아이의 손을 잡고 딸기밭이 있는 뒤뜰로 향했다. 발걸음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고, 새콤달콤한 맛을 생각하니 입안에서는 군침이 돌았다. 가까이 다가가자 딸기의 달콤한 향기가 코 끝에 닿았다. 아이가 처음 접하는 맛에 어떤 표정 일까. 눈을 찡긋거리며 한입 베어 물고 오물오물 거리는 아이의 얼굴도 상상이 되기 시작했다.


빨기 밭에 도착했다. 그런데 매일 보던 빨간 모습의 딸기가 보이지 않았다 “ 어!! 딸기가 없네. 어떻게 된 거지? ” 아침마다 아이와 함께 물을 주고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던 탐스러운 딸기가 싹 사라지고 없었다. 아이는 울상이 되어 샐룩거리더니 커다란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했다.


당황한 나는 “어머니!!, 어머니!! 딸기가 하나도 없어요” 부엌에 계시던 어머니가 달려오고, 쟁기를 챙기시던 아버님이 달려왔다. 아버님이 딸기 잎을 들쳐보시더니 반쪽 남은 딸기를 보며, 다람쥐가 먹어 치웠다는 것이다.

정말이었다. 먹다 남은 딸기를 보니 갉아먹은 이빨 자국이 다람쥐의 소행이었다. 화가 치밀었다. “ 이놈의 다람쥐!! 나타나기만 해 봐라 , 아작을 내고 말 테다.” 소리를 질렀다. 아이에게 줄딸기를 하나도 남겨두지 않고 다 먹어 치웠다. 사정을 알지 못하는 아이가 할아버지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서 있었다.


아버님은 이런 산골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집은 산밖에 보이지 않는 두메산골로 고개를 들어야 겨우 하늘이 보이는 그런 동네였다. 산골의 집 마당에는 동물친구들이 자주 나타났는데, 그중 다람쥐란 녀석은 집 마당을 제집 놀이터처럼 사용했고, 수시로 마루와 부엌을 드다 들며 곡식을 축내고 사라졌고, 마당에 널어놓은 농작물들을 헤쳐 놓고 가기도 했다. 나타나기만 하면 집안에 작패질을 했지만, 친구가 없는 딸아이에게 다람쥐는 유일한 볼거리며 즐거움이었다.


이 난감한 상황을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이는 딸기가 없어진 것을 알고 울기 시작했다. 딸기 맛을 알 수도 없었던 아이는 매일 보던 딸기가 없어진 것에 대한 상실감이 더 큰 듯했다. 겨우 달래서 아이의 울음은 그쳤지만, 사서라도 주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장터로 나갈 수 있는 날이 없어 못내 아쉬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딸기밭에서 함께 익어가던 앵두가 있었다. 딸기가 익어가길 기다렸듯이 아이와 나는 앵두가 익어가길 기다렸다. 빨간 앵두는 아침햇살을 받아 통통해졌다. 그동안 다람쥐에게 딸기를 뺏겨서 억울하고 분해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딸기 밭에 가던 날 아침처럼 아이의 손을 잡고 앵두나무로 향했다. 앵두나무가 보이기 시작하고, 입에선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아이 입에 넣어주면 오물거리며 먹는 모습이 상상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앵두나무에 도착하여 걸음을 멈추었다.


동시에 나무 밑에 깔려 있는 쌀알 모양의 흰색의 낱알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저건 멀까?.. 아뿔싸!! 다람쥐가 앵두를 다 따먹고 씨만 뱉어놓고 간 것이었다. 광에 들어가 물건을 갉아놓아도 봐주었고, 아이가 다람쥐를 귀여워해서 쫓아내지도 않았는데 이젠 귀엽고, 불쌍한 마음도 사라졌다.


딸기를 먹어 치웠을 때 눈치를 채고 단속을 해야 했다. 나보다 더 영리한 다람쥐는 앵두가 익자마자 새벽녘에 다녀간 것이었다. 화가 나기 시작했다. 두 번이나 다람쥐에게 당하다니,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앞뒤 생각도 없이 창고로 달려갔다. 창고를 뒤져 쥐덫 4개를 찾아 앵두나무 밑으로 쭉 돌아가며 덫을 놓았다.

다람쥐가 덫에 걸리기만 하면, 딸기 사건까지 포함해서 죄를 물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다람쥐는 영리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다람쥐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은 달음박질치듯이 가을을 향해 달려갔다. 아이는 제법 혼자서도 잘 놀고, 말도 늘었다.

다람쥐는 여전히 집 마당과 광을 드나들었다.


산골에서의 가을은 짧아서,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가을걷이도 해야 하고 겨울 준비도 해야 했다. 아침밥을 먹으면 아이를 둘러업고 밭으로 나가, 아이를 옆에 앉혀놓고 가을걷이를 거들었다.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가을걷이는 들깨 수확만 남은 상태였다. 들깨는 식용유를 구입하기 어려운 산골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농작물이었다. 들깨는 모든 음식에 기본이었다. 나물 물칠 때, 각종 전을 지질 때, 하다 못해 생선을 지질 때도 들기름을 사용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겨울 내내 필요한 영양분을 들깨로부터 얻었다. 특히, 육류가 부족한 아이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했다.


아이는 밭가에서 흙장난을 하며 놀았고, 부모님과 나는 들깨를 꺾어서 단을 만들고, 돌담을 따라 세워 놓았다. 햇볕에 잘 말려 털어서 자루에 보관하면 얼추 가을걷이는 끝이 난다. 가을 햇볕은 깻단 위로 쏟아져, 잘 말랐다.


드디어 깨를 털려고 깻단을 옮기려 하는데, 다람쥐가 깻단 위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딸기도, 앵두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깻단 위에서 부지런히 몸을 놀릴까? 의아해하며 살펴보았다. 다람쥐의 볼은 빵빵해져서 금방이라도 터질 듯 보였다. 도대체 무엇을 저렇게 많이 먹었을까?


앗뿔싸!! 깨 낱알을 먹고 있었다. 세상에나!! 아니 어떻게 그 작은 깨를 먹을 수 있지? 그리고 깨를 다 먹나?


딸기와 앵두 사건이 떠오르면서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 되었다. “ 이젠 할 수 없다. 다람쥐와 사생결단을 낼 수밖에” 광에서 덫이란 덫은 모두 찾아내 깻단 주위로 놓았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잡아서 가만히 놔두지 않을 테다” 결의를 다졌다.


덫에 걸리기만을 기다려도 다람쥐는 잡히지 않았고, 결국 다람쥐 포획작전은 참패였다. 이런 광경을 지켜보던 아버님이 다람쥐 잡는 법이 있는데 해보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봄부터 가을까지 몇 번이나 다람쥐에게 당한 나는 “ 예? 빨리 알려주세요” “ 정말 가만 놔두면 안 될 것 같아요”

아버님은 광에서 생선통조림과 낚싯대를 꺼내 오셨다. " 다람쥐를 잡는데 웬 낚시? "

낚시에 생선을 달아 깻단 위로 던졌다. 조금 지나자 다람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그러더니 생선을 덥석 물었다. 그러자 아버님은 바다에서 낚시하듯 낚아채어 다람쥐를 잡으셨다. 다람쥐가 낚시에 걸리다니... 상치도 못한 방법이었다.


다람쥐 낚시는 오후 내내 계속되었고, 낚시에 잡힌 다람쥐는 깊은 고무통에 넣었다. 욕심이 많은 다람쥐들은 생선을 물고 놓지를 않았다. 한 마리, 두 마리 점점 다람쥐 수가 늘어났고, 통속에 소 돌고 도는 다람쥐를 보며 아이는 재미있어했다.


낚시에 잡힌 다람쥐들은 며칠을 통속에 살다가 들깨 수확이 끝난 후 산으로 돌아갔다. 결국 다람쥐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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