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수 있다면 어머니를 위로해 드리고 싶다.

by 속초순보기

초등학교 6학년이 끝나갈 무렵 학교에서는 중학교 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친구들 모두 중학교를 가는데 아무 문제가 없는지 반친구들 모두는 원서를 냈다. 하지만 나는 원서를 낼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형제들도 많고, 집안 형편도 좋지 않아서 더이상 학교를 보낼 수 없다고 하였다.


아버지는 5남매 장남이었다. 아버지도 부모님을 도와 동생들을 거두어야 하는 입장이었는데다가, 양양철광에 다니시고 계셨다. 지하 갱도로 들어가 철을 캐는 광부들보다 월급이 적은 철 분류작업을 하셨다. 적은 월급으로 부모님과 동생들을 보살펴야 했고, 자신의 자식인 8남매를 거두어야 했다.

형편이 그렇다 보니 학교를 진학한다는것은 꿈에서라도 생각 할 수 없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내일까지는 꼭 입학 원서를 작성하는데 필요한 원서비를 가지고 오라고 하였지만 끼니조차 잇기 힘든 곤궁한 집안 형편 을 잘 알고 있는 나는 부모님께서 중학교는 가지 말래요.. 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중학교 진학은 하고 싶고, 아버지는 더 이상 진학은 불가능하다 하고...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해야 좋을지 방법을 알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 눈치만을 살폈다. 엄마가 부엌으로 나가면 같이 부엌으로 나가 엄마를 거들었고, 퇴근해 오는 아버지를 재빠르게 뛰어나가 맞이하기도 했다.


저녁 밥상에서는 이번 학기도 반에서 일등을 하였다고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한 번 더 이야기했다. 지금 정도라면 중학교에 가서도 일등은 문제없다고도 말씀드렸다. 하지만 부모님은 듣는지 마는지 밥만 드시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긴 겨울밤이 짧게만 느껴지고, 날이 밝아 아침이 오면 원서비를 받아 학교로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이불 속에서 이 궁리 저 궁리 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코를 골며 주무시기 시작했고, 동생들도 잠이 들었다. 엄마 자? 하고 옆에 누워 있는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엄마는 대답이 없으셨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며 잠 못 이루고 있는데, 동생의 다리가 얼굴 위를 덮쳤다. 코가 시큰거렸다. 안 그래도 마음이 심란한데 동생까지 얼굴에 발을 올리다니... 동생의 다리를 홱 밀쳐 버렸다.


새벽이 되자 어머니는 군불을 넣고 밥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살며시 일어나 겨우내 먹을 쌀과 고구마, 감자 등이 들어 있는 윗방으로 들어갔다. 흙냄새가 코를 찌르고 냉기가 꽉 차있었다. 나는 쌀자루를 뒤졌다. 엄마가 가끔 쌀자루 속에서 돈을 꺼내는 걸 보았기 때문이었다. 자루에 손을 집어넣어 휘휘 저어가면 돈을 찾기 시작했다. 없었다. 엄마는 돈만 생기면 쌀자루 깊숙이 넣어 두셨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돈이 들어 있을 만한 서랍과 단지들을 뒤져 보았지만 없었다. 어쩌지... 돈을 꼭 가지고 가야 하는데... 원서비가 없으면 중학교를 갈 수 없는데... 울상이 된 나는 방을 나가려고 안방으로 향하는 미닫이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미닫이문의 손잡이를 옆으로 밀려는데 벽에 걸린 엄마의 옷이 눈에 띄었다. 혹시? 하면서 옷의 주머니를 뒤졌다. 700원이 들어 있었다. 700원이면 원서를 쓸 수 있다...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잽싸게 가방에 넣었다. 그러고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누웠다. 엄마의 돈을 훔쳤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빨리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다.

얼마 후 엄마가 아침 먹자며 아버지와 우리 형제들을 깨웠다. 밥을 빨리 먹고 돈을 훔친 것이 발각되기 이전에 학교를 가야 되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마음이 급한 나는 동생들에게 빨리 일어나라며 재촉을 했다. 야속한 동생들은 이불 속으로 더욱 파고들어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밥상에 앉아서도 온통 신경은 가방에 가 있었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끝내고 일어났다. 내가 일어나자 동생도 따라 일어서며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내가방을 들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얼른 가방을 뺏어 가슴에 감쌌다. 그리곤 학교로 내 달렸다.


등 뒤에서는 동생들이 같이 가자며 부르는 소리가 합창처럼 들렸지만 난 그대로 학교까지 달려갔고, 도착하자마자 교무실로 가서 원서비를 내고 중학교 입학원서를 썼다.


그리고 겨울방학이 끝나고 봄방학을 하는 날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중학교 입학금과 등록금 고지서를 나누어 주었다. 엄마 돈을 훔쳐 원서를 썼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중학생이 된다는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에게 보여 드렸다.

고지서를 본 아버지가 대뜸 화를 내면서 누가 원서비를 주었느냐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엄마가 모른다고 하자 나에게 똑바로 말하라며 윽박질렀다. 아버지의 호통에 당황한 어머니가 학교에서 애가 공부를 잘하니 대신 내 주었나 보다며 둘러댔다.

엄마와 내가 대답을 안하자 아버지는 똑바로 말하라며 엄마의 얼굴을 때렸다. 어린내가 볼때 아버지의 손찌검은 두들겨 팼다고 할 수 없을 정도 였다. 그런 아버지가 무서워 부엌으로 도망가서 울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맞으면서도 피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 공부를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애를 그럼 가만 놔두냐"라며 오히려 나를 두둔하셨다.


밖에서 놀다가 들어온 동생들이 엄마를 때리는 아버지에게 매달려 울자 그제서야 멈추었다. 그리곤 나가 버리셨다. 어머니는 계속 우시기만 하시면서 아무 말씀도 안 하셨다. 어머니를 중심으로 빙둘러 앉아 우리 모두는 울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한참을 울다 밖을 보니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울음을 그친 어머니는 우리 형제들을 다독거리며 나에게는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내가 너 하나 못 가르치겠냐며 중학교 가서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셨다. 그 이후 나는 장학금을 타서 고등학교까지 졸업을 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내가 돈을 훔친 걸 아실 텐데 왜 아버지한테 맞으면서까지 아무 변명도 안 하셨을까. 내가 어머니의 주머니에서 돈을 몰래 가지고 가서 멋대로 원서를 썼다고 해도 됐을 텐데 말이다.


오늘 어버이날 외할머니 옆에 뿌려진 어머니를 찾아 뵙고, 그날의 이야기를 고백하고 고맙다는 말을 해야 겠다. 아울러 내게 소중한 엄마를 낳아 주신 외할머니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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