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로 접어들면서 시부모님과 우리 부부는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남편이 10월말이면 군 입대를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 때까지는 농사 걷이도 해야 하고, 월동준비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남편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을 미리미리 준비를 해둬야 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의 어느 날 아버님이 몸에 이상이 와서 전혀 농사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남편이 아버님을 대신해서 집안의 대소사와 농사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받아놓은 날짜는 이틀이 하루처럼 흘러갔다. 태어나서 막 한 달이 되어가는 딸아이를 보살피느라 나는 부엌일만 거들고 있었다. 남편은 온종일 바깥일을 했다. 옥수수를 따서 밭에서 집 마당으로 지게로 운반하였고, 수확을 미처 못한 고추들을 따서 건조하고, 다음 해 농사 준비를 위해 밭고랑에 덮여 있던 비닐을 벗겨내기도 하면서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저녁이 되어서는 아이 옆에서 떨어지지 않고, 목욕을 시키고, 말을 시키며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려나갔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에게 “ 아빠, 군대 갔다 올 때까지 건강하게 자라렴.” “ 아빠 없는 동안 엄마 잘 부탁한다”라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는 나는 가슴이 뭉클해지고, 한편으로 군대 간 3년을 아이와 어떻게 버텨내야 할까 걱정이 되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 날은 겨울을 재촉하는 늦가을 산골의 바람은 더욱더 사랑방의 문풍지를 울렸다.
입대 날짜는 얼마나 빠르게 다가오는지, 내일이면 남편은 입대를 위해 논산으로 떠날 것이다. 생각하며 남편과의 마지막 밤을 마주했다. 찬바람은 사랑방 문 사이로 스멀스멀 들어왔다. 아이를 목욕을 시키고, 기저귀를 각에 맞추어 다 개어놓고,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웠다. 아이는 따뜻한 사랑방 아랫목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밖에서는 늦가을 바람이 마당에 있는 대추나무며, 배나무를 흔들어 댔다. 마음은 안 그래도 심란한데, 바람은 더욱 부채질하고 있었다. 그때 마당에서 세숫대야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일어나려는 남편을 그대로 있으라며, 밖으로 나갔다.
날아가다 담벼락에서 멈추어 있는 세숫대야를 원래의 위치에 가져다 놓으며 안방을 바라봤다. 안방에도 불이 밝혀져 있었다. 부모님께서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계셨다.
방으로 들어와 자리에 누워도 여전히 잠이 오지 않았다. 옆에 있는 남편에게 자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했다.
“ 군대가 있는 동안, 나와 아기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신경 쓰지 말고 군 생활 잘 마치고 와. 설사 내가 아이를 놔두고 이 산골에서 뛰쳐나간다고 해도 말이야. 무슨 일이 생겨도 탈영 같은 일은 하지 마. 나 때문에 당신의 인생을 망치는 일은 절대 하지 말고. “ 아무 말 없이 남편은 듣기만 했다.
“ 그리고, 나한테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도 당신은 당신 인생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해” 여전히 남편은 아무 말이 없었다. 입대를 앞둔 남편이 더욱 심란하고 염려가 될 터였다.
뒤척거리는 밤이 지나고 입대 날 아침이 되었다. 마당의 수돗가에는 살얼음이 얼어 있었고,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부엌에서는 어머님의 벌써 아침 준비를 끝내고 우리가 일어나길 기다리고 계셨다. 야채 위주의 산골 밥상은 거의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밥상에는 계란 프라이가 올라와 있었다. 어머님이 자식을 위해 마련한 특별 반찬이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가족 모두 말이 없었다. 밥을 먹고 남편은 방으로 들어가 간단한 짐을 꾸리고 있었다. 부엌으로 들어가 설거지를 하는 나에게 어머님은 “ 아범이 집을 나갈 때 절대 눈물을 보이지 말아라, 군대 가는 남편 마음만 어지럽고, 군대 가서도 편하게 근무를 못 한다”라며 부탁 어린 말씀을 하셨다.
남편과의 산골 생활을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군대에 가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마음을 다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님이 그렇게 말씀하셔도 마음은 덤덤했다.
남편이 짐이 든 가방을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밤새 바람으로 마당에 몰려든 낙엽을 쓸고 계시던 아버님과 부엌에서 설거지하고 있던 어머님과 내가 마당으로 나갔다.
남편은 잘 다녀오겠다며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린 후 나를 쳐다봤다. 눈만 마주칠 뿐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내일이면 아빠가 제 곁에 없다는 걸 모른 채 잠들어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기 위해 포대기를 들치고 “ 아빠, 갔다 올게” 하며 남편은 아이에게 인사를 건넸다.
대문 밖을 나서는 남편의 뒤에는 부모님이, 그 뒤에서 내가 따라 나갔다. 대문을 벗어나 읍내로 나가는 도로에 접어들자 어머님은 눈물 바람이셨다. 나보고는 울지 말라더니 어머님이 우시는 것을 보니 “ 남편보다는 자식이 우선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황량한 밭을 지나 마을 어귀를 벗어나자 남편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멀어지는 남편이 모습이 쓸쓸해 보이면서 더욱 왜소하게 비쳤다. 남편이 사라진 길에는 산골짜기의 통 바람이 불어와 도로의 흙먼지를 쓸고 지나갔다. 벌써 바람이 찬데 엄동설한의 훈련을 어떻게 받을지 걱정이 앞섰다.
남편이 떠나고 나자 부모님과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남편이 미처 끝내지 못한 가을걷이를 시작했다. 참깨를 마당에 널고, 무청과 옥수수를 처마 밑에 매달아 놓고, 기저귀를 세탁하여 마당을 가로지르는 빨랫줄에 널었다.
이따금 바람이 불어와 빨랫줄에 걸려 있는 하얀 기저귀 사이로 남편이 걸어 나가던 대문이 보였다.
“ 지금쯤 버스를 탔으려나” 가름해 보았다. 신병교육대가 있는 논산으로 가려면 서울로 가서, 머리를 깎은 후, 하룻밤을 머물렀다가 기차를 타고 입대한다고 했다. 남편은 어제까지 유행한 펑크 머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박박 밀어버린 남편의 머리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10월 말 산골의 해는 일찍 떨어졌다. 정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 아이에게 “ 오늘 아빠가 입대를 위해 떠났어. 우리 ooo 건강하게 잘 크고, 엄마도 잘 부탁해..”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이는 꼬물거리며 말을 하면 답을 하듯이 옹알이를 하기 시작했다. 옹알이하는 모습이 너무 기특하고, 허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아이에게 계속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아이는 옹알이로 답했다.
홀로 남은 며느리가 안쓰러워서인지 어머님이 우리의 방 동태를 살피러 오셨다. 옹알이하는 아이를 보며, “ 아범이 봤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하시며 안타까워하셨다. “ 서울엔 잘 도착했을까?, 한 달이 지나야 소식을 전할 수 있다고 하던데….”라는 말씀을 하시곤 어머님은 안방으로 건너가셨다. 어머님도 아들을 군대 보내고 쓸쓸하셨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자리에 누웠다. 남편의 빈자리가 느껴졌다. 눈물이 눈가를 타고 흘렀다. 아무리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자는 아이를 들여다보며, 아이의 성장 과정을 혼자만 봐야 한다고 생각하니 더욱더 슬퍼졌다.
달빛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모습이 방문에 비쳤다. 가을바람에 문풍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세게 울었다.
다시 한번 문단속을 하기 위해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다. 찬바람이 소매 속을 훅 파고들어 왔다. 대문 옆에 있는 외양간을 문을 살펴보았다. 외양간의 소는 연신 되새김질을 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내 기분 탓인지 어미 소의 커다란 눈도 슬퍼 보였다. 문단속을 마치고 마당 한가운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앞동산 위에는 달님이 떠 있었다.
“ 오늘은 10월 28일 남편이 입대를 위해 집을 떠난 날, 오늘부터 매일매일 육아일기를 쓰고, 편지가 가능할 때 부쳐야지...” 하며 달님을 보며 마음을 먹었다. 그날부터 나는 매일매일 870일 동안 한 줄씩 아이의 커가는 과정을 짤막하게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