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사랑

by 속초순보기

오늘은 결혼하고 3년 만에 친정을 방문하는 날이었다. 시내버스에서 내리자 익숙했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업고 있던 아이를 내려놓자 아이는 길을 따라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몇 시간을 버스와 내 등에서 힘들었던 모양이다. 내 앞에서 아장아장 걷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지금의 내 아이처럼 이 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부모님, 형제들과 함께했던 추억이 주마등처럼 눈앞에서 떠올랐다.


달려가던 아이가 잠시 멈추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엄마가 뒤에 있는지 확인을 하는 것이었다. 많이 본듯한 장면이었다.


내가 어머니에게 한 행동을 아이가 똑같이 하고 있었다. 길 양옆에는 냉이꽃이 노랗게 피어 있었다. 냉이꽃을 손으로 잡아당겨서 꺾더니 나에게 가져다주고는 다시 걸었다.


집 앞으로 건너가는 다리 위에 서자,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물가엔 미나리가 자라고 있었다.


미나리를 꺾어 부침개를 해 먹었는데... 하며 옛날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시냇물이 퐁 하고 뛰어 올라왔다. 아이가 작은 돌멩이를 가져와 던진 것이었다. 추억에 잠겼었던 나는 어른 아이에게 집으로 들어가는 길을 가르쳐 주며 걷기 시작했다.


아이는 여전히 무엇이 그리 좋은지 꽃을 보다가도 종알종알, 지나가는 개구리에게도 종알종알.....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신랑을 따라나선 나에게 부모님은 동네 창피하다며 집으로 오지 말라고 했다. 그 시간이 3년이었다. 소문이 잠잠해지고 내 상황을 자연히 받아들일 때쯤 집으로 와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 생각에 눈물이 흘렀다. 내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의 마음을 알아챈 것일까....

내가 부모님에게 큰 죄를 지었구나 생각하며, 부모님이 어떤 꾸중을 하던 조용히 듣고 있을 참이었다. 한편으로 예쁜 손녀딸을 보면 부모님 마음이 내심 누그러지길 기대했다


친정집 앞 밭에는 따뜻한 초여름의 햇볕을 받으며 옥수수가 자라고 있었다. 초록 잎의 옥수수 사이로 강아지풀 잎이 반짝하고 빛나는 것이 내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를 중심으로 모여 앉아 강아지풀 잎으로 피리를 만들어 불던 생각이 잠시 떠올랐을 때쯤 대문에서 어머니가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전화가 없었기도 했지만, 방문을 거절당할까 두려워 그냥 가보자 하는 심정으로 무작정 친정집으로 향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내가 오는지 모르고 계셨다.


대문 밖으로 나온 어머니는 아이를 보고, 순간적으로 알아채셨는지 달려오시더니 아이를 들어 안으셨다. “ 야가, 우리 ooo 딸이구나... ” 할머니의 품에 안긴 아이는 내 쪽으로 몸을 틀어 빠져나오려고 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나는 본채만 채 하시더니 아이를 안고 그대로 집 안으로 들어가셨다.


안도의 숨이 쉬어졌다. 왜 왔냐며 꾸중을 들을 줄 알고 내심 겁을 내고 있었는데, 그동안의 걱정이 한순간의 물거품으로 사라졌다. 그래도 아버지가 계시니 긴장을 풀지 못한 채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아이를 중심으로 동생들과 부모님이 빙 둘러 모여 앉아서 아이를 쳐다보며 한 마디씩 말을 시켰다. 22년을 함께 한 가족들이 맞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 나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아버지는 그동안의 서운함도 잊은 채, 늘 함께했던 딸처럼 “ 오느라 고생했다. 거기 앉아라.”라는 말만 하시더니 이미 아이에게 온통 신경을 다 뺏겨 버렸다.


어머니는 나에게 그동안 어떻게 살았냐, 고생이 많지 않냐, 사위도 없는데 잘 지내고 있는 나며 폭풍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질문에 답을 해야 할지 몰라 눈만 크게 뜨고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어머니도 그제야.. 내 정신 좀 봐라. 멀리서 오느라 배고플 텐데 밥부터 먹자며 부엌으로 나가셨다.


어머니를 따라 부엌으로 나간 나는 그동안의 이야기를 말씀드렸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남편을 따라 줄행랑을 쳤고, 아이까지 낳았다는 소문이 퍼져, 집안 어르신들에게는 자식 교육 제대로 못 시켰다고 혼났던 이야기와 동네 사람들이 쑤군덕대는 이야기를 감내하느라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얼굴을 들을 수 없었다. 졸업하고 취직을 해서 동생들도 보살피고, 직장 걱정 없는 남편감, 아니 최소한 군대라도 다녀온 사람을 만날 줄 알았던 부모님 입장에서 보면 배은망덕한 자식이었다.


여전히 방에서는 아버지와 동생들이 아이와 웃고,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었다. 퇴근하시고 돌아오면 집으로 돌아가고 당분간은 못 볼 것을 안타까워하신 아버지는 회사로 향하면서도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셨다. 밥을 먹자마자 어머니는 아이를 둘러업고 동네로 마실을 가셨다. 손녀딸 자랑을 하러 가신 게 분명했다. 아이는 처음 보는 외할머니인데도 낯을 가리지 않고 잘 따랐다.


마실을 다녀오신 어머니의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있었다. 등에 업었던 아이를 내려놓으시며 사진을 한 장 찍자고 하셨다. 언제 다시 볼지 모르니 나하고 아이 사진을 찍어 놔야겠다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3년 동안 어머니는 나를 그리워하신 게 틀림없었다. 최대한 이쁜 모습을 보여 들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젊은 시절 어머니가 입었던 노란 저고리와 치마가 한 세트인 한복을 찾아 입었다.


어머니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나도 어머니처럼 마음 따뜻한 엄마가 되겠다는 맹세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이에게는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된 여동생이 어릴 때 입던 한복을 입혔다.


어머니는 집 옆에 있는 우물가에 나와 아이를 세우고 남동생에게 사진을 찍게 했다. 그렇게 찍힌 사진이 아이와 나와의 첫 번째 사진이었다. 내가 돌아간 이후 사진을 인화하여 어머니는 내가 보고 싶을 때마다 꺼내 보셨다고 한다.


이제 어머니는 안 계시고 그 사진은 내가 가지고 있다. 사진을 볼 때마다 부모님에게 죄송하고, 부모님의 사랑에 내가 있었구나. 나도 내 자식에게 부모님처럼 조건 없는 사랑을 주리라...


오늘 아침 그 사진을 다시 보니 눈물만 나온다. 부모님을 속상하게 해 드렸고, 나로 인해 마음고생만 하신 부모님... 너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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