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철뚝길 아래 있었다. 철둑길을 따라 열집정도의 가옥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고, 대부분의 가장인 아버지들은 대한철광(양양철광)에 다니셨다.
양양철광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너무 많은 양의 철을 채굴해가서 매장량은 많지 않았지만 광업소는 잘 돌아갔다.
광업소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것을 간접으로나마 알게 된것은 술집때문이었다. 학교로 가는 도로에는 술집들이 즐비 했으니까.
술집은 아버지가 가끔 가시는곳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비번인 대낮이었다. 엄마는 우리가 학교에서 돌아오길 기다렸다가 어느 술집에 가면 아버지가 있을테니, 급한일이 생겼다며 꼭 데리고 오라는 심부름을 보냈다.
학교를 오며가며 보았던 술집에는 주로 여자들이 있었다. 여자들 대부분은 대부분 요상하게 화장을 하였고, 건물을 지나갈대마다 노래소리가 들리기도 하였고, 아저씨들과 싸우는 소리도 들렸다.
어떤날은 화장을 요상하게 한 여자가 담벽에 기대어 담배를 피기도 하였고, 웅크리고 앉아 작대기로 그림을 그리고, 훌쩍이는 여자도 있었다. 머리가 산발이 되고, 가슴이 다 보이는 옷을 입은채 담배를 물고 있는 여자들을 볼때면, 눈을 피하게 되었고, 거부감이 들었다.
평소에 보았던 술집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때문 가고 싶지 않았지만 급한 일이 생겼다는 엄마의 부탁이니 안 갈수 도 없었다.
술집에 도착하여 문을 열었다. 일제히 나를 쳐다 보았다. 나를 쳐다 보는 사람중에는 엄마의 말처럼 아버지가 계셨고, 놀라는 아버지의 표정과 맞닥드렸다.
아버지 주변에는 3명의 여자들이 더 있었고, 당황한 아버지는 소리를 지르며 나를 당징 집으로 가라며 쫒았다.
학교가는길에는 그런 술집들이 즐비하였고 대부분의 술집은 초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문전성시를 이루었으므로, 철광에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부자인줄 착각하였다.
그 이후 아버지는 여자들이 있는 술집에는 가지 않는것 같았고, 일을 끝내고 회사 주변에서 마시곤 하셨다.
퇴근후 회사주변에서 술을 마신 후부터 아버지에게는 술버릇 하나가 생겼다. 아버지의 술버릇은 술을 드시면 곧장 집으로 들어 오지 않고, 건너편 언덕에 서서 나의 이름을 부르시는것이었다.
우리집이 있는 철뚝길 건너편 언덕에도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철뚝길과 언덕사이에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고, 건너편 언덕은 아버지가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중간에 있었다. 반드시 언덕을 거쳐 개울을 건너고서야 집으로 올 수 있었다.
건너편 언덕에서 내려다 보면 철뚝길 아래 집들과, 동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언덕에서는 우물가 여인들이 무엇을 하는지, 동네 꼬마녀석들이 무엇을 하는지, 다 알수 있을정도로 가까운 거리였고, 철광에 다니는 아저씨들의 퇴근 통로였다.
퇴근 통로인 그 언덕에서 술만 드시면 자식의 이름을 부르는 세사람이 있었다. 그 세사람은 나이도 비슷하였고, 같은 철광 같은 부서에 다녔다. 그리고 자식들 나이들도 비슷비슷하여 친구이거나 기껏해야 한두살 위거나 아래였다.
아버지도 그 세사람중 한 사람이었다.
퇴근길에 한잔을 걸치고 거나해진 아버지는 건너편 언덕에 서서 내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내가 대답할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불렀다. 처음 아버지가 나의 이름을 불렀을때는 바로 대답을 하고는 아버지가 계시는 언덕으로 달려갔다.
거나하게 취하신 아버지는 우리딸이 왔네.. 하시며 손에 들고 계시던 주전부리 봉투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나를 앞장세우시고 뒤따라 걸으시면서 "공부 열심히 해야한다, 아버지가 돈버는 것도 다 너희들 위해서 하는거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하셨다.
아버지의 반복되는 말씀을 듣는둥 마는둥 앞장서서 걷다 보면 집에서 대기하고 있던 동생들이 우르르 달려 나와 아버지를 애워 쌌다.
아버지는 내손에 쥐어 주었던 봉투에서 과자를 꺼내 들고, 우리 형제들 이름을 태어난 순서대로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는 자기의 이름이 불리워 지면 큰 소리로 대답을 했다.
대답을 듣고 나서야 아버지는 과자를 주었다. 언니들의 큰 목소리에 기가 죽은 어린 동생은 울음을 터트리기도 하였고, 과자가 점점 사라져 자기몫이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우는 동생도 있었다.동생들의 그런 표정을 즐기시는듯 아버지는 한결같이 웃으며 막내까지 이름을 불렀다.
태어난 순서대로 이름이 불리워지고, 과자 배분이 끝나면 아버지는 나이 순서대로 다시 줄을 세웠다. 그리고는 우리를 앞장세우고 집으로 들어왔다. 아버지의 이런행동이 시작된 것은 우리 8남매중 5섯째가 태어난 직후였다.
그 이후 아버지는 술만 드시면 우리 형제들에게 똑같은 일을 반복시켰다. 점차 우리는 아버지의 이런행동이 지겨워 지기 시작했다. 나는 8남매중 둘째였으나, 위의 언니는 가정형편상 할머니댁에 맡겨 놓았기 때문에 내가 장녀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내 이름을 대표로 불러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내 이름을 알게 되었다.
5명의 자녀들의 이름을 다 부르고, 대답까지 확인한후 하사품을 내리고, 아이들을 앞장세워 집으로 들어가는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게다가 대답이 시원찮으면 몇번이고 반복해서 불렀다.
아버지가 술을 드시는 날은 연례행사처럼 한번도 거르지 않았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부터 아버지의 행동이 창피해졌다.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할수도 없었다. 그리고 더 이상 과자에 혹하고 넘어가는 내가 아니었다.
그러자 이버지가 계획을 바꾸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아버지의 술버릇은 집안에서 이루어졌다. 야외 무대에서 실내무대로 이동만 한것이었다. 이때는 막내 동생도 세살이 되어 내 무릎위에 올라 앉아 아버지의 물음에 대답 할 정도로 자라 있었다.
먼저 나이순서대로 이름을 부르고, 형제들 모두 자리에 있는지 확인을 하였고, 그다음엔 노래를 시키기 시작했다. 실내로 들어온 행사는 위문공연까지 겯들이게 된 셈이었다.
아버지가 늦게 들어 오시는 날은 자고 있는 우리 형제들을 모두 깨우고는 똑같이 행사를 진행 시켰다.
자다 일어나 귀찮았지만,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린 졸린상태에서 대충 노래를 불러야 했다. 졸린상태에서 노래가 제대로 될수 없지 않은가. 그러면 아버지는 정신을 차리고 노래를 할때까지 반복 시켰다.
동네 아저씨들은 이런 아버지를 모두 부러워했다. 우린 모두 아버지를 위해 노래를 부르는 거니까.
그러던 어느날 건너편 언덕에서 누군가가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났다. 설마 !! 아버지가 다시 언덕에서 ? 우리 형제들은 이불속에서 귀를 쫑긋하며 불리워지는 이름을 들으려 애를 썼다.
건너편 언덕에서 부르는 이름은 우리 형제들 중 한명의 이름이 아니었다. 이웃집 아저씨였다. 그 이웃집 아저씨도 아버지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술만 드시면 건너편 언덕에 서서 철뚝길 마을을 쳐다보며 자식의 이름을 불렀다.
자식들을 앞장세우고 걷는 아버지는 마치 군대의 지휘관 같았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이웃집 아저씨는 부러운 나머지 따라하는군아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또다른 목소리의 주인공이 언덕에서 이름을 부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날은 한여름의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이었다. 우물가에서 등목을 하던 우리 형제들인 일제히 방안으로 숨어들었다. 아버지가 술만 드시면 했던 행동 패턴에 변화가 생긴것이라며 방안에 틀어 밖혀서 대답도 하지 않은채 쥐죽은듯이 있었다.
건너편 언덕에서 부르는 소리는 점점 커졌고, 커지는 목소리 만큼 우리형제들은 두껍게 이불로 귀를 감쌓다. 부르는 소리를 애써 외면하면서도 우리는 모두 전전긍긍 하였다. 그리고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름 부르는 소리는 점점커져 동네가 떠나갈듯 크게 들렸다. 점점 불안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름 부르는 목소리는 점점 더 커져, 짜증까지 묻어나기 시작했다. 무서워졌다. 아버지를 왜면하다가 큰일이라도 벌어질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아버지를 외면하는것에 대한 죄책감 마저 들었다.
하지만 우린 쉽사리 나설수 없었다. 나설거라면 초반에 나서야 했다. 지금 나갔다가는 아버지의 화를 돋아서 필시 맞아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이에 시간은 흘렀고, 점점 더 우린 사면초가에 빠졌다.
아버지는 끈질겼다. 대답이 없으면 멈추고 들어오실법도 한데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설마 7남매중 한명이라도 대답을 하길 기대하는걸까? 동생들 중 한명이라도 내보낼걸 그랬나..
언덕위의 목소리는 이젠 애원하는듯한 목소리리로 바뀌어져 있었다. 나는 동생들에게 아버지에게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한번만 더 부르면 다같이 나가보자며 이불밖으로 나왔다.
다시 이름이 불리워 졌다.
어 !! 그런데 그 이름은 우리 7남매의 이름 중 하나가 아니었다. 잘못들었을까? 귀를 귀우려 다시 들어봐도 우리 형제들의 이름은 아니었다. 들어본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그 와중에도 이름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우리 자매들은 모두 이름이 촌스러웠기 때문에)
우리의 이름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자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우린 모두 마당으로 나와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아닌 이웃집 아저씨 였다. 나중 안 사실이지만 이웃집 아저씨에 의해 불려진 이름은 아저씨의 아내였다.
술을 드시면 늘 우리형제들에게 노래를 시켯떤 아버지는 우리가 점점 커가자 그만 두었고, 대신에 아버지가 혼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실제로 아버지는 노래를 잘 불렀다. 특히 배호의 노래를 좋아했고, 배호의 엘피판은 모두 사들였다.
덕분에 나도 배호 노래는 왠만하면 아직도 따라 부른다.
우리 형제 8남매가 다 커서 각자의 인생을 살 쯤 아버지는 술을 드셔도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으셨다.
평소 말이 없었던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우리에게 사랑의 표현을 한것이 아닌가 ...우리 형제 모두는 그렇게 생각 하게 되었다.
그런데 철둑길 아래 동네에 살았고, 술만 먹으면 언덕에 서서 자식들 이름을 부르던 2명의 아저씨와 아내이름을 불렀던 1명의 아저씨는 지금쯤 무엇을 하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