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간서치 N 전기수 Apr 11. 2020
마흔에 내가 일하고 있는 공기업 입사 시험 준비를 하였다. 이를 위해 토익과 한국사 능력시험을 준비했다. 4년 동안 공들여 얻은 토익과 한국사 능력시험 점수는 730점, 그리고 1급이었다. 기고만장하게도 그 두 가지 변변치 않은 스펙으로 공기업 입사에 도전한 것이다. 단지 근무 경력을 인센티브로 인정해 주는 것을 믿고서. 결과는 보기 좋게 서류전형 탈락. 만용이 가져온 실패였다. 그렇게 떨어진 뒤로는 일터에서 만나는 공사 신입사원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 힘든 과정을 뚫고 사원증을 목에 단 그들의 얼굴이 빛나 보였다.
낙심 중에 아내 친구의 권유로 군무원 시험에 도전하기로 했다. 공기업 입사 준비로 갖게 된 토익과 한국사 능력시험 점수 덕에 국어와 전공 두 과목만 준비하면 되었다. 하지만 첫 번째 시험은 필기 전형에서 탈락했다. 세 과목만 보면 된다는 생각에 시험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과거 방송통신대학 재학 시절, 객관식 시험이라 안심한 덕에 첫 학기에 전과목 낙제 점수를 받은 악몽이 떠올랐다. 방통대에 편입한 지 6년 만에 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다음 해 시험에는 정신 차리고 공부한 덕에 필기는 커트라인 이상으로 합격했지만, 면접에서 떨어졌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내가 면접 시작 날 첫 번째 면접 자라는 점이었다. 통계적으로 일찍 면접을 보는 사람들은 좀처럼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고 한다. 이후에 면접자를 고려하기 때문이다. 그게 한 가지 이유였고 마지막 이유는 역시 준비 부족이었다. 면접관의 질문에 너무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면접관 눈에는 면접 보기 싫은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군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지방 기술직 공무원 시험도 준비했었다. 두 번 도전했지만, 두 번 다 필기에서 떨어졌다. 다섯 과목 중 한국사와 전공과목 점수가 낮았기 때문이었다. 한국사 능력시험 1급의 실력도 공무원 시험에서 만큼은 힘을 쓰지 못했다. 한 번은 제일 낮을 거라고 믿었던 지역에 지원했는데, 그 해 그곳의 커트라인 점수가 가장 높았다. 게다가 한 과목이 과락이었다.
이렇게 몇 년 동안의 시험공부는 결실을 맺지 못하고 끝났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공부 여정이 끝난 것은 아니다. 지금은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인중개사가 넘쳐나는 때에 이 공부를 한다면 듣는 이마다 말리지만, 막상 해보니 유익한 공부라는 생각이 든다. 부동산학은 경제관념을 갖게 하고, 민법은 생활에 밀접한 법을 다루기에 도움이 된다. 기타 세법이나 공법은 투자에 도움을 주고, 공시법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1,2차 동차 합격을 목표로 삼았으나, 눈높이에 맞추어 1차 합격을 우선 목표로 잡았다.
앞으로도 나의 공부 여정은 지속될 것이다. 이후에는 외국어를 공부할 것이다. 나중에 영어나 일본어, 중국어로 유튜브 방송을 만드는 게 꿈이라서 그렇다. 이처럼 나는 계속 다른 대상을 찾아 공부하고 있을 것이다. 비록 떨어지긴 했지만, 학창 시절 이 정도로 공부했으면 좀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갔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공부하는 한 나는 늙지 않을 것이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듯이, 나의 머리는 굳지 않을 것이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중년 이후의 뇌도 얼마든지 노력 여하에 따라 좋아질 수 있다고 한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공부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