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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서치 N 전기수 Aug 08. 2020

변기에서 일어나면 꼭 뒤를 봐라

들어는 봤나, '멜레나'

"멜레나 입니다."

의사는 응급실에 실려와 간신히 정신을 차린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의학 지식이 전무한 나는 그게 병명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아닌 걸 나중에 알았다.

'멜레나'는 '혈변'을 뜻하는 의학 용어였다.

그렇다. 한마디로 '피똥'. 난 피똥을 싼 것이었다.


삼십 대 초반에 있었던 일이다.

그 당시 나는 경기도 안성과 평택 사이에 있는 금형 회사에 다녔다. 숙소는 평택에 있는 아파트 기숙사였다. 

퇴근하면 늘상 아홉시가 넘었다. 여유는 없는데, 설계직이라 스트레스가 심했다.

금요일 저녁에 상경했다가 일요일 저녁이나 월요일 아침 일찍 다시 내려가는 생활을 했었다.

언제부터인지 설사를 자주하기 시작했다. 그것과 함께 어지럼증도 찾아왔다. 

내과에도 갔었고, 이비인후과에도 갔었지만 뚜렷한 원인을 찾지는 못했다.


그 날도 서울 집에 왔다가 내려가야 하는 날이었다.

전날 주일에 교회를 가는데, 젊은 놈이 걷지 못하고 기어가다시피 했다. 

집에 오는 길은 아는 형의 차를 빌려 탔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출근해야 하는데, 도무지 일어날 수 없었다.

회사에 사정을 말하고, 점심 때 쯤에 집을 나서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가는 길에 바닥에 주저 앉아 버렸다.

도무지 병원까지 갈 수가 없을 정도로 몸이 안 좋았다.


119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향했다.

진찰을 마치고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수혈과 수액 공급을 위한 관이 팔뚝에 꽂혔다.




젊음 덕분인가. 그 덕분에 다음날 아침에는 씻은 듯이 나았다.

그래도 열흘 동안 금식해야 했다.

먹는 것의 소중함을 그때 절감했다.




원인은 스트레스였다. 

스트레스로에 빈 속에 위액이 나와에 위벽을 헐게 했다. 그로 인해 드러난 혈관에서 출혈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몸밖으로 흘러나온 피의 양이 치사량에 이를 때쯤 병원에 실려왔다.  




피가 섞인 변은 자장면 색이 난다.

위나 십이지장에 출혈이 나면 이 색이 나고, 대장 이후에 생기면 그야말로 핏빛이 난다.


그래서 변기에서 일어난 뒤에는 꼭 뒤를 보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명이 당신 몸에서 빠져나가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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