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경이라는 경전-16-
우리는 모든 부와 마찬가지로 불 역시 집중되기를 꿈꾼다. 불을 좀 더 잘 보전하기 위해 우리는 불을 좁은 공간 속에 가두고자 한다. 하나의 몽상 유형 전체가 우리를 집중된 것에 대한 명상으로 이끈다. 이는 큰 것에 대한 작은 것의 복수요, 드러나 있는 것에 대한 숨겨져 있는 것의 복수다. 이런 종류의 몽상을 살찌우기 위해 전 과학적인 정신은 우리가 방금 보았듯이 갈색머리 남자와 대포 같은 극히 불규칙적인 이미지들을 집중시킨다. 거의 늘 적용되는 규칙과 같은 것으로서, 오랫동안 반추를 거듭하는 정신이 결국 과학적 사유로 가는 길을 찾게 된 것은 큰 것에 대한 몽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작은 것과 집중된 것에 대한 몽상을 통해서다. 어쨌든 불에 대한 사유는 다른 어떤 원리에 대한 사유보다도 더, 집중된 힘을 향한 몽상의 기울기를 따른다. 대상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그런 몽상은 과묵한 남자의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몽상과 같은 것이다. 사실 전 과학적인 정신의 소유자에게는 모든 씨앗의 원리가 불이며, 최소한의 외적 양상만 있어도 그것의 증거가 되기에 충분하다.
가스통 바슐라르의 책,『불의 정신분석La psychanalyse du feu』의 많은 부분을 인용하였지만, 그 얇은 책이 필자에게 많은 혜안을 주었다. 그 중에 하나는 리비도를 추구하는 인간으로 정의한 프로이트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그 책은 보여줬다. 프로이트는 연금술사의 추종자였다.
저자는 과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연금술사들의 연금술이 엄청난 성적 몽상과 부와 회춘의 몽상과 힘의 몽상을 거쳤음을 제시한다. 그 성적 몽상은 바로 아궁이(foyer)의 몽상이며, 연금술은 순전히 아궁이의 몸상의 성적 특성을 실재화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객관적 현상들에 대한 기술이 아니라, 사물들의 심부에 인간의 사랑을 새겨 넣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프로이트의 사상은 잃었던 불의 원소가 주는 성적인 울림들을 일깨우는 것이다. 그것은 실체를 생산이라는 관점에서, 생식이라는 관점에서 사유하는 것이다. 그것은 불에 의해 원소화 된 물이나 대지에 대해 말하는, 유황에 의해 배태(胚胎)된 물질에 대해 말하는 연금술적 영감을 되찾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이 불의 원소를 다룰 때에 불이 세상에 주는 영향과 우리 맘에 주는 영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원초적 감정에서 사로잡혀 불이 일으키는 오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가스통 바슐라르, 김병욱 역, 『불의 정신분석La psychanalyse du feu』, 이학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