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서치의 전기수 이야기-7-
을의 철학, 곧 우리 모두의 철학이다. 을의 삶을 살던 저자의 삶이 철학과 함께 베어 나온 책이다. 도서관에서 세무사 시험을 준비 중이던 저자는 막연한 호기심에 다른 경제학 서적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 책이 우연하게도 마르크스의 [경제학-철학 수고]였다.
이후로 저자는 철학에 탐닉하기 시작한다. 그 때부터 니체, 스피노자, 비트겐슈타인, 들뢰즈, 샤르트르, 프롬과 같은 현대 철학자들의 저서들을 탐독하기 시작한다. 그건 마치 물은 떠난 고기가 물을 만난 격이었다. 철학자들이 심도 있게 사색하고 풀어낸 사상들은 오묘하게도 저자의 생와 잘 들어 맞았다. "내 마음 아실 이-곧 당신 철학자"였다.
이 책에는 을로 산 저자의 삶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 영업 사원, 은행 사무 보조, 고시원 총무. 읽으면서 참 여러 직업을 전전했구나 싶었다. 인생의 경험이 그의 몸에 기억되고 다시 그 기억을 끄집어 내어 철학과 버무려 책으로 독자 앞에 내놓았다.
철학은 저자의 삶을 해석할 사유를 제공해 주었다. 어쩌면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게 바로 이런 각자의 삶을 해석할 수 있는 텍스트를 제공하는 일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도구화 하였다. 노동은 신성하다고 하지만, 상품화 하여 값을 매겼다. 매년 말이면 그 값을 놓고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힘겨루기를 하는 걸 지켜본다. 저자는 마르크스의 저서들을 통해 노동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된다. 이 책에서도 언급된 전태열 열사도 철학은 아니지만, 근로기준법을 통해 자신들 삶의 부조리를 느꼈을 것이다. 이처럼 부조리를 깨닫는 사람은 어제와 같은 사람이 아니다. 그는 더이상 지금까지 살아온 생각과 모습으로 살 수 없다.
자본주의의 생리만 믿고 그것의 폐해를 모르는 모진 갑들은 을을 괄시한다. 그들은 갑이다. 정규직이다. 저들은 을이다. 비정규직이다.
나도 십 년 넘게 공기업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특히 며칠 전까지 자회사 파업으로 더욱 뼈저리게 느낀 점은 같은 인간이지만, 자회사 직원 없이는 공항이 돌아가지 못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은 저들만의 자존심. 우리는 어렵게 경쟁률 높은 난관을 뚫고 들어온 정규직 직원이라는 프라이드.
저들은 그렇다 쳐도 같은 노동자들끼리도 정규직 비정규직을 가르기도 한다. 내 기억으로는 과거 지엠 대우 감원했을 때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이 대부분 직장을 그만 두었다. 그 때 정규직은 가슴을 쓸어 내렸을지 몰라도 저들은 몰랐다. 비정규직은 탄광 속의 카나리아라는 걸. 비정규직이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은 정규직의 목도 곧 날아갈 것이라는 걸. 그래서일까. 이후로 지엠의 한국 철수설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이 책에 많은 철학자들이 나온다. 서양의 현대 철학자는 물론이고, 노장과 불교 사상도 인용된다. 평행선 같지만 어느 순간 한 점에 모이는 걸 느낄 수 있다. 그건 타자에 대한 인식과 배려다. 타자를 통해 나는 내가 되고, 타자에 대한 배려가 곧 나에 대한 배려라는 것이다. 철학은 이것을 가르쳐 준다. 성경이 말하는 인생의 황금률도 마찬가지다. 네가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것이다.
저자가 비록 나보다 어리지만, 참 직장 생활은 나 이상 험난한 길을 거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야간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느라 힘들지만, 나름 만족한 삶을 살고 있을 테지만 말이다. 그래도 같은 을이었기에 공감이 가고, 내가 관심 가는 철학이어서 하루 만에 다 읽었다.